[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삶은 유한하니 …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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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28면

최근 두 선배가 한 주 간격을 두고 불의의 사고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과 비통함, 그들의 부재를 다시금 확인할 때의 허탈함과 그리움, 유족을 만났을 때의 먹먹함…. 이 모든 감정과 함께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은 나 자신도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리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이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스쳤음이 틀림없다. 빈소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오간 추모의 말끝에는, “우리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살아 있는 순간 순간을 소중히 보내자”는 말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죽음에 대한 담론

우연히도 얼마 전 내가 모처에 기고한 미술 칼럼의 제목은 바로 이 메시지를 라틴어로 요약한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이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간이기에, 그 칼럼을 쓸 때만 해도 며칠 후 그 메시지를 이렇게 절절히 곱씹을 슬픈 일을 겪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오늘을 잡아라라는 뜻이다. 서구 문학과 예술에서 이 두 메시지는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테마다.

프란츠 할스의 그림(왼쪽)과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오른쪽).

예를 들어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프란츠 할스의 그림을 보면, 화려한 깃털 모자를 쓴 청년이 마치 ‘햄릿’의 한 장면에서처럼 해골을 들고 있다. 그는 지금 젊고 멋쟁이고 부유하지만 어느 날에는 죽어서 저 해골과 같은 신세가 되리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그걸 자꾸 상기시켜서 뭐, 어쩌라는 것인가? 답은 19세기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에 숨겨져 있다. 이 그림은 다음과 같은 옛 시구를 표현한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 / 시간은 계속 달아나고 있으니 / 그리고 오늘 미소 짓는 이 꽃이 / 내일은 지고 있으리니.”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는 “오늘을 잡아라”와 같은 뜻이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오늘을 잡으라는 것일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인가, 아니면 “열심히 살자”인가. ‘카르페 디엠’의 기원이 된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가 Ⅰ-ⅩⅠ’는 “길고 먼 희망을 짧은 인생에 맞춰 줄이라… 오늘을 잡아라, 내일을 최소한만 믿으며”라고 말한다.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통해 정신적 평안의 쾌락을 얻는 것이었다.

예일대 철학 교수 셸리 케이건의 경우에는 좀 더 능동적이고 건설적 형태의 ‘카르페 디엠’을 주장한다. 그는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에 삶을 가능한한 많은 것들로 채워 넣어서 최대한 많은 축복을 누려야 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출간된 뒤 지금까지 내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그간 한국에서 죽음에 대한 담론을 터부시하던 경향이 이제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삶을 잘 마감하는 이른바 ‘웰다잉(well-dying)’에 관한 강좌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삶을 가치 있는 것들로 채우기 위한 노력이 현재의 즐거움과 계속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쩔 것인가? 이에 대해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명쾌한 해답을 주었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내 자신에게 물어왔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그 대답이 ‘아니다’란 날들이 너무 많이 계속될 때마다 나는 뭔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세요… 여러분의 시간은 유한하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허비하지 마세요.”

그러고 보니 지난 5일은 잡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2주기였다. 지금 애플의 미래나 그의 생전 인격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잡스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일을 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 또 현재를 즐긴 인물이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오늘도 잡스의 이 말을 떠올린다.

“죽음은 삶이 만든 유일한 최고의 발명품인 것 같습니다. 죽음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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