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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가 남긴 원고·서류 쟁탈 ‘문건대전’ 점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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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29면

문혁 발발 2년 전인 1964년 10월 16일 후난(湖南)성 민병(民兵)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원수 예젠잉(왼쪽 첫째). 화궈펑(왼쪽 셋째)이 후난군구 정치위원 자격으로 예젠잉을 수행했다. 두 사람은 이날 처음 만났다. [사진 김명호]

절대권력이 죽으면 후유증이 큰 법,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기까지 한 차례 홍역을 치러야 한다. 세계 최대의 혁명정당, 중국공산당도 예외가 아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43>

예젠잉과 화궈펑이 연합하지 않았다면 4인방 제거는 불가능했다. 마오쩌둥 사망 당시 당내에는 실무, 극좌, 혁명원로 등 3개의 파벌이 있었다. 마오가 후계자로 지명한 당 제1 부주석 겸 총리 화궈펑과 마오의 직계였던 중앙 경위국장(8341부대 최고 지휘관) 왕둥싱, 마오의 부인 겸 생활비서 장칭을 필두로 한 4인방, 젊은 시절부터 온갖 별꼴을 다 겪은 예젠잉ㆍ천윈ㆍ리셴녠ㆍ네룽쩐 등 당 원로들이 각 파벌을 대표했다.

4인방은 결집력이 강했다. 원로들은 정치국과 군에 포진해 있었지만 문혁을 겪으며 눈치꾸러기로 전락했다. 화궈펑은 군과 정치국을 장악하지 못했고, 중앙경위국도 마오가 세상을 떠나자 방향을 잡지 못했다. 잠복해 있던 권력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두 파벌이 손을 잡으면 다른 하나는 몰락하는 싸움이었다.

화궈펑과 연합한 예젠잉은 신중했다. 4인방을 제거하기까지 약 1개월간 거처를 옮겨 다니며 원로들을 설득했다. “정치와 범죄는 그게 그거다. 성공하려면 주도면밀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서라면 몰라도 괴팍하고 변덕이 심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이번 싸움은 먼저 거는 쪽이 진다.” 마오가 살아있을 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1946년 3월 장칭이 중공 근거지 옌안(延安)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특사 마셜 원수를 배웅하고 있다.

싸움은 4인방 측에서 먼저 걸었다. 9월 17, 18, 19일 사흘간 문건대전(文件大戰)이 벌어졌다. 4인방은 마오쩌둥이 남긴 원고와 서류들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마오의 문건을 관리하던 비서가 구술을 남겼다. “장칭은 오래전부터 주석의 수고(手稿)와 문건의 내용을 궁금해했다. 주석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거의 매일 나를 찾아와 원고를 보자고 요구했다. 9월 18일 추도회가 끝난 후에는 다급해 보였다. 왕둥싱에게 보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왕둥싱은 부하들을 파견해 문건이 있던 방을 봉쇄해버렸다. 주석의 침실과 서재가 중앙판공청 명의로 봉쇄된 것을 발견한 장칭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돌아가는 뒷모습이 예전과 달랐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문건대전이 한창이던 1976년 9월 18일 오후 3시 마오쩌둥 추도식이 천안문광장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100만 명으로 제한했다. 이날도 한 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발단은 엉덩이였다. 시작 10분 전 화궈펑이 천안문을 등지고 군중을 향해 도열한 당·정·군 고위인사들에게 제안했다. “뒤로 돌아 주석의 유상(遺像)을 향해 세 번 절하자.” 부총리 장춘차오(張春橋)가 싱긋이 웃고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마라. 돌아서서 절을 하면 저 많은 군중에게 우리 엉덩이를 삐죽 내밀어야 한다.” 4인방 중 나머지 3명도 “추도객들에게 엉덩이를 들이댈 수 없다”고 동조했다.

예젠잉과 리셴녠은 “정치국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이라며 화궈펑 편을 들었다. 화궈펑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고 4인방에게 화를 냈다. “광장의 군중에게 엉덩이를 내밀지 않으면 주석에게 우리의 더러운 엉덩이를 들이밀란 말이냐.”

숙소로 돌아온 장칭은 화궈펑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앙정치국회의를 열자고 요구했다. 장춘차오와 왕훙원은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4인방의 근거지 상하이에 급전을 보냈다. “군용차량을 징발하고 민병(民兵)들에게 실탄을 지급해라. 해안에 경비정을 배치하고 레이더에서 눈을 떼지 마라.”

9월 29일 평소 습관대로 오밤중에 정치국회의가 열렸다. 장칭은 이날도 연금 중인 덩샤오핑을 당에서 축출하자며 원로들을 압박했다. 장춘차오는 엉뚱한 의견을 내놨다. “10월 1일 개국기념일 행사를 성대히 열자. 8341부대와 베이징군구도 병력을 동원해라.” 잠자코 있던 화궈펑이 예젠잉을 힐끔 쳐다봤다. 벌떡 일어난 예젠잉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오는 길에 왕둥싱 옆을 스치며 살짝 말했다. “지금은 비상시기다. 군 동원은 절대 안 된다.” 왕둥싱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를 마친 장칭은 왕둥싱을 잡고 늘어졌다. “나는 주석의 미망인이다. 남긴 원고와 문건들을 내가 보관하겠다.”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주석의 친필 원고와 문건들은 우리 당의 중요한 보배다.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중앙판공청에서 보관함이 마땅하다.” 왕둥싱은 중앙판공청 주임도 겸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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