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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전설」을 깨뜨린『고겡』의 전기 작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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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폴·고갱」전이 이번주 미국「신시내티」미술관에서 막을 열었다. 「반·고호」와 더불어 후기인상파의 뛰어난 화가요, 현대문명을 구가한「프랑스」를 떠나 남태평양의「타이티」섬에서 원시생활을 즐겼다고 해서「현대의 전설」같이 알려진「고갱」의「타이티」이전 작품을 모은 전시회다.
1870년대초의 반인상파 작품에서부터 1880년대말의「아르드」와「퐁타벵」의 자기「스타일」형성기의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들은「고갱」의 전설을 깨뜨리고 사설을 밝혀주는 구실을 한다고 미술 평론가들은 보고있다.
영국 소설가「서머시토·몸」은 『달과 6「펜스」』라는 소설에서「고갱」을「부르좌」 문명에 반역하는 극적인물로 그렸다. 이런식의「고갱」에 대한 해석들은「고겡」의 그림값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 했지만 사실은 그릇된 것이다. 「타이티」생활을 통해서「고겡」 이 얻은 것은 천연두였고 「타이티」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이들의 의식이나 사회 구조조차 잘 몰랐으며 그들의 주식인「얍」이나 물고기를 먹는 대신 통조림된「악스파라거스」와 포도주를 즐겼다. 그는「파피에르」항에서 사들인 관광사진을 보고 원시생활을 묘사하곤 했다. 더우기 그의 화풍이 이「타이티」생활을 통해 변화된 것도, 분방하게 된 것도 아니다.
1891년에 그가「프랑스」를 떠날때 그는「반·고호」나「모리스·데니스」그리고 상징파 시인들의 존경을 받은 중견화가였다. 「타이티」는 그가 이미 확립한「비전」과「매너」에 새로운 소재를 주입한데 불과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가 예찬한 원시주의는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빛깔과 평면적「패턴」을 좇아 환상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며「부르좌」도덕과 기술을 불신하는 것이다. 이 불신이 그로 하여금 상상적인 낙원에 대한 깊은「노스탤지어」를 갖게 했으며「파나마」와「마티니크」로 여행한 것도 현실에서「에덴」을 찾으려한 노력이었다.
「페루」의 아저씨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나, 낙원에 대한 동경이 그로 하여금 「타이티」에 가기전에 이미 『「아담」과「이브」또는『실락원』(1890)을 그리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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