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盧정부 성공, 巨野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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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각계 각층의 주문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초라하게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들을 지켜보아 왔기 때문에 그 주문들은 간절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대통령과 내각, 그리고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못지 않게 야당인 한나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북 송금사건에 대한 특검법안을 통과시킨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나라당이 국정의 반을 책임지고 있는 국회의 다수당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정치도 결국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 노무현 정부가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 수구 머물땐 개혁 광풍 예고

노무현 정부가 국민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도적인 유권자의 선호에 맞는 정책을 선택할지, 아니면 적지 않은 국민이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듯이 이상적 모험주의를 선택할 것인지의 여부는 한나라당의 노선 선택에 적지 않게 영향을 받는다.

한나라당이 수구보수의 이미지를 벗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도 성향을 대변하게 된다면, 노무현 정부도 다음 총선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는 중도 성향의 정책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국민 대다수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아니 수구적인 목소리를 계속 내는 한 노무현 정부는 중도에 있는 유권자를 한나라당에 빼앗기게 될 우려가 적기 때문에 이상적 모험주의를 감행해 보고 싶은 유혹이 커질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겸손하게 권력을 행사할 것인지, 아니면 역대 정부들이 그랬듯이 사정의 칼을 휘두르며 종국에는 그 자신도 부패해 갈 것인지, 또 인재를 고르게 등용할 것인지, 아니면 많은 국민이 우려하듯이 운동권 정부를 만들어갈 것인지 여부 역시 한나라당의 인적 구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나라당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인물들로 구성된다면 노무현 정부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적 수단에 기반한 개혁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패의 혐의가 있는 인물,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것으로 의심받는 인물들이 한나라당의 주류를 이룬다면 사정의 칼을 휘두르며 국민의 박수를 받고 싶은 유혹, 운동권 세력을 등용함으로써 도덕적 우월성을 유지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성패는 한나라당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한나라당도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수구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온건보수로 노선 변경을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구당위원장의 기득권에 손대지 못한 현재의 개혁안대로 갈 경우 영남의 보수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을 의원이 많지 않다는데 한나라당의 비극이 있다.

영남 극보수 의원들의 이미지가 한나라당 전체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음에도 그 피해는 수도권의 온건보수 의원들이 지불해야 하는 역설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극보수의 소수 야당을 파트너로 맞이한 노무현 정부는 권력의 오만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이 있다.

*** 盧 '이상적 모험주의' 견제를

이러한 비극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은 지구당위원장직을 폐지하고 후보 완전경선제를 도입해 한나라당을 지지한 1천1백40만 국민들에게 당을 보다 건강하게 만들 기회를 주어야 한다.

특히 영남에서의 세대교체는 선순환을 일으켜 수도권 후보들의 입지도 강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그동안 변함없이 한나라당을 지지해온 영남 유권자에게 당을 거듭 탄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북한을 다루는 방식, 노무현 정부의 미국을 다루는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 국민들이 적지 않음에도 그들이 선뜻 한나라당을 대안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고 소아적 기득권 유지 발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