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4)경칩을 간(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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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마다 봄철이 접어들면 나는 봄앓이를 시작한다.
올해는 봄기운이 태동되기 전에 전지요양을 떠나서 습관성 봄질환을 면하도록 하라는 의사의 권고도 있고 해서 단단히 조심을 했는데도 아차 하는 순간에 걸린 감기가 유행성 독감이 되고만 것이다.
어저께는 봄비가 내리고 앞담 밑 석류의 파아란 움이 눈에 띄게 볼록볼록 내 방 유리창을 비쳐 들어 온다. 오늘이 경침! 이러고 보니 나의 봄앓이는 참으로 영험스럽게도 계절의 감각에 빠른 촉각을 가졌는가 싶어 스스로 대견스러워지기도 한다.
나는「마스크」를 끼고 뜰로 내렸다.
겨울 동안 꽃나무를 싸맨 가마니를 벗기고 꽃밭의 흙을 고르면서도 행여 호미 끝에 땅 밑에 엎드린 개구리란 놈들이 다치지나 않을까 조심을 했다. 연못에 새물을 넣고 온실에 두었던 수련 궤짝을 옮겨다 넣었다. 금붕어도 물 속에 넣어 주었더니 좁은 어항에 견디던 놈들이라 꼬리를 저으며 생기를 낸다. 화분들도 손을 보아 군잎을 따고 나뭇가지도 전지를 하고….
처음엔 나무를 싸맨 가마니나 벗겨서 봄볕을 쬐어주려고 뜰로 내려간 것이 하나 하나 손질을 하다보니 한나절이 지나고, 연방 기침을 하면서 작업에 열중한 내 모양을 두고 가족들은 자못 못마땅해하는 눈치였지만 감기가 더쳐 내일 다시 앓는 한이 있을지라도 나는 오늘의 따스한 볕을 나무들에게 비쳐주지 않고선 스스로 잔인한 느낌의 자책으로 해서 우선 나 자신의 애정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졌기 때문이다.
봄비가 내린 뒤의 양광! 이 3윌의 아늑한 생명의 정기를 내 심령 속에 받기 위해선 내 육신은 몇번의 봄앓이를 치러도 원통할 것 하나 없을 것만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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