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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상권, 소비자 마음부터 얻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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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영민
경제부문 기자

소상공인 대책은 어느 정부에나 어려운 숙제다. 골목상권은 실물경제가 회복돼도 온기가 가장 늦게 퍼지는 윗목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7일 정부가 발표한 ‘소상공인 자생력 제고 대책’도 내용 곳곳에 골목상권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빅데이터 활용·로컬푸드(산지 50㎞ 이내에서 소비하는 농산물) 도입 같은 아이디어는 분명 혁신적이었다. 그렇지만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 고연령층이 다수인 시장 상인들은 스마트폰·태블릿 PC 등에 서툴다. 정보통신기술(ICT) 도입을 위한 재원도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았다. 담당자들은 “SK텔레콤·KT 등 민간 기업과 협업하기 때문에 예산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답할 뿐이었다. 일찌감치 재래시장 살리기를 표방하고 나선 통신업체 행사에 숟가락만 올리는 꼴이다. 로컬푸드도 그리 간단하지 않다. 신선도 관리, 상품 배송망 확보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대기업들조차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일본의 로컬푸드 매장은 생산자가 직접 가격을 정할 뿐만 아니라 ‘채소 소믈리에’ 같은 상품관리인을 매장에 보내 신선도를 체크하지만, 이번 대책에는 단지 당일 배송이라는 표피만 언급됐다. 정부는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하면 나들가게(정부지원 수퍼마켓)와 중소유통물류센터 간 ‘주문 → 출하 → 배송’이 1일 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개설된 나들가게도 613개가 폐업했다. 이들이 생산지에서 하루 만에 신선한 농산물을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실제 상인들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하다. 정부는 예산 3조원을 써 가며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정작 상인들은 이로 인한 임대료 상승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상인들 말대로 임대료를 제한하거나 임대료 동결 조치를 내리자니 재래시장의 슬럼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마땅치 않다.

 이 상황에서 직시해야 할 건 단 한 가지뿐이다.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을 기피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영업 시간 제한, 의무 휴업 등 각종 규제에도 대형마트 매출은 1년 전보다 19% 늘었다. 반면 재래시장은 온누리 상품권 등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4% 감소했다.

 온갖 지원책이 쏟아져도 불편한 주차장, 가게마다 들쑥날쑥한 가격 등과 같은 재래시장의 근원적인 불편함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어서다. ‘어떻게 해야 소비자들의 떠난 마음을 되찾아올 수 있는지’ 쪽에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원칙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이번 골목상권 지원책 역시 상인도, 소비자도 외면하는 ‘발표용 자료’로 잊힐 공산이 크다.

김영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