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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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학교의 우·열반 편성은 교육당국에 의해 금지되고. 있다. 어느 학교나 그 일률적인 지시에 따라 혼성반으로 편성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학교 교사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 교과의 진도가 없기 때문이다. 중간학생들을 의식하고 수업을 하면 우수생이나 열등생모두가 홍미를 갖지 않는다. 결국 「3분의1」만을 위한 수업이 외어 버린다. 중심을 잃은 수업은 「딜레머」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중간급의 학생들은 대개 우수 지향형이다. 이들을 위한 수업은 열등생들에겐 도무지 난해할 수밖에 없다. 현대의 교육방법은 『어떤 사실을 빠른 시간에 얼마나 정확히 전달하느냐』하는데 있다. 시청각교육은 그런 노력 중의 하나이다. 그렇지 않고는 현대의 그 정보홍수를 당해낼 수가 없다.
미국의 어느 국민학교에선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구구산을 익힐 때 우선 그것만을 집중적으로 암기시켰다. 그리고는 많은 시간을 그 응용 방법에 사용했다. 또 다른 반에서는 구구산 하나를 일일이 응용에 의해 깨우치게 했다. 어느 경우가 더 능률적이었을까. 의외에도 전자의 경우였다.
그러나 실험의 성과는 여기에 있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도 교육방법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른바 열등생의 경우는 비록 시간과 노력은 소모되지만 후자의 방법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교육은 엄연히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과학이다. 아무나 교육자가 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열반의 편성에서·우선 걱정스러운 것은 『열등생들의 열등의식을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은 편성 상의 기교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 뿐 아니라 우·열의 차등은 내내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다음 학기엔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이것은 교육의 능률문제이지, 차별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더구나 한 교실에 60여명을 수용한 대량수업의 경우, 문제는 더욱 커진다. 이 때의 혼성반은 우·열의 「갭」이 넓어만 진다.
『우·열반이냐, 혼성반이냐』는 결국 중학 운영자들이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어야 한다. 당국의 일률적인 지시로 무조건 금지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혼성반은 도리어 우·열의 간격을 깊게 만들어 전원 열등생을 만들 위험도 없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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