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이룬 재회…동경의 남과 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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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경=조동오·윤용남특파원】남과 북에서 20여년 동안 헤어져 살았던 두 남매가 일본동경에서 이루어 보려던 극적 상봉은 북괴가 이들 남매의 만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했기 때문에 지척에서 기회를 잃었다. 한국에서 누이를 만나 보겠냐고 19일 일본에 온 한필성씨(38)는 20일 상오 8시50분부터 민단 측이 상봉의 장소로 북괴 측에 제의한 오오꾸라 호텔에서 50여분간 동생 필화가 와주기를 초조히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자 보도진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기자 회견을 열어『동생이 오늘 낮 12시50분에 동경을 떠나는데 시간이 없다. 여러분, 오빠가 동생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데 왜 오지 않느냐? 제발 좀 만나도록 주선해 주십시오』라고 발을 구르며 애원했다.
그러나 북괴 선수단장 손길천은 이날 상오 9시15분 일본기자들만 데이꼬꾸 호텔로 불러 『우리는 오빠가 동생을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상봉을 단념한다』는 엉뚱한 성명을 발표, 남매의 상봉을 끊어버렸다.
한편 이날 상오 8시50분 한필성씨는 재일 거류민단 사무 총장 박태환씨와 함께 이미 지난19일 북괴 측에 상봉 장소로 제의한 오오꾸라·호텔 아스까노마(방의 이름)에 먼저가 상봉시간으로 민단 측이 제의한 상오 9시까지 누이 필화를 기다렸다.
한씨는 9시가 넘어도 꿈에 그리던 누이 필화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자 이들 남매의 극적 상봉을 취재하기 위해 몰린 50여명의 내의기자들과 즉석 회견, 『오빠가 현해탄 건너 누이의 얼굴을 20년만에 보려고 왔는데 왜 오지 않느냐. 제발 우리 남매를 만나게 해주시오…』 호소하기 시작했으며 『우리 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인데 누이가 오빠를 찾아와야지, 어떻게 오빠가 동생을 찾아가느냐, 우리 남매의 상봉을 이루어달라』며 입술을 떨었다.
한씨는 『동생 필화가 떠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하네다 공항에 나가겠느냐?』는 기자질문에 『북괴와 조총련이 나를 납치하고 끌고 갈 음모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나갈 수 있는가. 누이 필화를 여기에 데러와 줄 수 없느냐. 나는 내가 묵고 있는 뉴·오오다니·호텔 북괴선수 숙소인 데이꼬꾸·호텔의 중간지점인 오오꾸라·호텔에 와 있지 않느냐. 한 동경 땅에서 우리가 만날 수 없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라며 손을 와들와들 떨기도 했다.
동생과의 상봉이 실패한 한필성씨는 숙소인 뉴·오오다니·호텔에 돌아와 상오 10시30분쯤 한필화 숙소인 데이꼬꾸·호텔에 전화를 걸어『점심이라도 같이 하자고 말했으나 호텔 측에서 이미『나갔다』는 대답을 받았다.

<한필화 측>
북괴 측은 민단 측이 이들 남매의 상봉 장소와 시간을 제의한데 대해 한번도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아사히신문을 통해 동생이 오빠가 데이꼬꾸·호텔에 찾아주기를 기다렸다』며 『만나러 와주기 바란다』고 전했을 뿐이다. 삽보로·프리·올림픽에 참가했던 북괴선수단이 묶고있는 데이꼬구·호텔 14층에서 한필화는『오빠가 찾아 주기를 기다렸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는데 지난 19일 밤엔 조총련 측이 연 파티에 참석했으나 먼저 호텔에 돌아와 오빠를 기다렸다는 것이며 오빠가 오지 않자『오빠가 나를 만나러 왔는데 오지 않는 것은 정치적인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필화 안보이고 북괴단장이 회견>
한편 북괴 선수단장 손길천은 이날 상오 9시15분 북괴선수단의 숙소인 제국 호텔 14층 소 회의실에 일본기자들만 불러 기자 회견, 『누이 필화가 19일 밤부터 오빠를 만나려고 기다렸는데 동생을 찾아오지 않았고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상봉을 단념한다』는 간단한 성명서를 낭독했는데 이 자리에 한필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손은 민단 측이 남·북에 갈린 남매의 단순한 만남에 사과하라는 조건(먼저 한계화씨가 삽보로에 갔을 때 북괴 측이 망명하라고 권유한 것을 민단 측이 사과하라고 요구했음)을 붙였는데 이를 수락할 수 없고 오빠 측이 이 조건을 철회하고 데이꼬꾸·호텔로 만나러 오면 지금이라도 만날 용의가 있으나 오빠가 오지 않는 것을 어떻게 만나느냐』고 말했다.
일본기자들이 손에게 『한필화가 왜 나오지 않느냐, 나오게 하라』고 요구하자 손은『한필화 선수는 이미 이제 충분히 만났고 이야기도 다하지 않았느냐 면서 『떠날 시간이 임박해서 준비에 바쁘다』고 말끝을 흐렸다.

<한필성씨 기자회견>
한필성씨가 20일 상오 9시가 넘어 9시20분까지 30분 동안 동경 오오꾸라·호텔에서 가진 내외 기자 회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지금 심경이 어떤가?
▲답=만나봐야 알겠다. 필화가 낮12시50분에 떠나게 된다면 시간이 없지 않은가, 빨리 만나게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같으면 자유롭게 필화가 오빠를 만나러 올텐데 지금까지 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답=북괴 측의, 정치적인 장난이 없었으면 직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괴는 남매가 서로 만나는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기 때문에 직행하지 못했다.
▲문=누이동생이 틀림없는가.
▲답=목소리를 듣고 어느 정도 확인 할 수 있었지만 직접 만나지 않고는 내 동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 앉겠느냐.
▲문=19일 저녁 한국대사관에 갔는가.
▲답=하네다 공항에 내린 즉시 재일 거류민단 동경분부에서 마련해준 차편으로 한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뉴·오오다니·호텔 1523호실에서 잤다.
한필성씨는 동생과의 재회가 실패하자 숙소인 오오다니·호텔에 돌아와 『점심이나 같이하자』고 한번 더 전화.【동경=서울전송·조 특파원 찍음】

<민단제의…"오오꾸라·호텔서 상오 9시에 만나자">
19일 밤 민단 측이 필성·필화 남매의 상봉을 주선하여 재일 거류민단 박태환 사무총장의 명의로 북괴 측에 전달된 「한필성 남매 면접에 관한 제의」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필성씨의 남매 상봉에 앞서 당신들 측에 다음 사항에 대해 분명하고도 성실한 사과를 요구한다.
전번 한 선수가 실매로 생각되어 일본까지 상면코자 방일했던 한계화여사에게 평양으로부터 전문으로 한국에 대한 악선전은 물론 심지어는『망명할 의사만 표시하면 백방으로 옹호 해줄 것이며 일본의 진보적인 인민들도 조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망명과 이에 따른 수단 방법까지 제시한 바 있는데 이는 한필성씨의 경우에도 재연된 비 민족적 처사로서 사과를 요구한다.
19일 밤 한 선수는 데이꼬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음모 운운했는데 이는 인도적인 상면을 정략적인 것으로 악용하는 것으로 정중히 사과하기를 요구하며 ①한필성씨는 한필화선수와 혈육을 나눈 실매이며, 당신 측의 한 선수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②한필성씨는 남매와의 눈물겨운 상봉의 기회를 갖고자 19일 밤 이곳에 도착해서 재일 거류민단에 주선을 요청했다. ③따라서 우리는 이 숭고한 인간애가 정치적인 선전에 악용됨이 없이 존중되는 가운데 오랜 세월을 떨어져 있던 남매의 상봉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제의한다.

<제의조건>
①장소=오오꾸라·호텔 2층 아스까노마 ②일시=20일 상오 9시 ③입회=쌍방 각1명과 제한된 언론인(쌍방 조직원의 참가를 금지한다).

<서성대는 조총련청년들…상면 그리며 뜬눈으로 밤새워|동경서의 한필성씨-하네다 도착>
이날 한필성씨가 노드웨스트 항공기 편으로 하네다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는 주일한국특파원 20명과 일본인기자 30여 명 등 50여기자와 민단사무총장 박태환씨를 비롯, 많은 민단간부들이 마중 나왔다. 한씨는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팔을 들어 「V」 자를 그렸다. 입국수속을 마치는 동안 주변에는1백여명의 조총련계 청년들이 서성거렸으며 수속을 끝내고 나오자 이들은 한씨의 차를 미행하는 등 남매의 상봉에 찬물을 끼얹는 인상을 주었다. 조총련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비하여 일본경찰은 3대의 트럭에 경비 경찰관을 출동시켜 공항주변을 경계했다.

<호텔서·첫 밤>
20년만에 「동생 필화」를 만난다는 감격을 안고 19일 하오 5시35분 동경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한필성씨(39·서울동대문구 용두동 129의8) 는 상봉의 순간을 그리며 뜬눈으로 하룻밤을 새웠다. 검정색 양복을 입고 공항에 내린 한씨는 도착 즉시 동생을 만나게 될 것을 기대했으며 민단을 통해 동경시내 오오꾸라·호텔에서 만나도록 제의했으나 북괴 측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한편 1백여 명의 조총련계 청년들이 하네다 공복 기도하려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보여 상봉의 꿈은 20일 상오로 미룬 채 긴장과 초조에 찬 하룻밤을 보냈다. 한씨를 맞은 민단 측은 이날 밤 10시30분 박대환 사무총장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갖고 남매의 상봉을 주선하는 한편 북괴가 한계화씨가 일본에 왔을 때 망명 방법을 제시하는 등, 정치적으로 악용했던 점과 이날 하오 한필성씨가 도착했을 때도 1백여 조총련계 청년들이 공포 분위기를 빚었던 일에 대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저의를 버리고 인도적 입장을 단측은 20일 상오 9시에 오오꾸라·호텔 2층의 아스가노마에서 입회인 1명씩과 제한된 신문기자를 참석시킨 가운데 남매의 상봉을 주선하도록 정식으로 제의했으나 북괴 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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