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 재처리, 파이로 프로세싱 검증 땐 예외 인정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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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가 6일 본지 국제전문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최근까지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가 방한했다. 원자력 협정이 돌파구를 못 찾고 있는 가운데 본지 김영희 대기자, 배명복 논설위원, 남정호 중앙SUNDAY 국제선임기자가 6일 아인혼 전 특보와 간담회를 했다. 그는 파이로 프로세싱(건식 재처리) 기술과 관련해 “한·미 공동연구를 통해 이 기술의 타당성이 확인되면 (재처리와 관련해) 한국에 예외를 인정할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 한국에서는 미국이 핵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변화를 원치 않으며 현 상황을 유지하려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미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의미 있는 변화를 포함한 합의가 이뤄져 있다. 그 합의에는 핵기술의 이전과 높은 수준의 협력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해 밝힌 세 가지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 에너지부와 한국 정부 간의 협의도 시작됐다. 이와 관련해 현재 중요한 것은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두 나라는 고속로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런 높은 수준의 협력이 진행 중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의 목표가 현상유지라는 주장은 찬성할 수 없다.”

 - 한국 측은 최소한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기술을 확보하길 원한다. 타협점은 무엇인가.

 “절대 안 된다는 게 아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거다.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로 연구소에서 실험이 진행되는 수준이다. 많은 과학자가 대규모 처리가 가능할 거라고 주장하나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니 일단 단기적인 해결책을 찾자는 거다. 우리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다. 임시적인 보관소를 마련하고 최종 결정은 뒤로 미뤄야 한다. 우라늄 농축은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 다만 박 대통령의 목표가 안정적인 핵원료 확보라면 현 시장 상황으론 걱정할 일이 아니다. 공급원이 충분하지 않은가. 한국 스스로 우라늄 농축을 하려 한다면 이는 경제적으로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 안정적인 공급선 확보를 원한다면 외국의 우라늄 농축업체를 인수하거나 지분을 확보하면 된다.”

 - 일본은 재처리 기술을 가지고 있다. 왜 일본은 되고 한국은 안 되나.

로버트 아인혼 전 특보(오른쪽)가 6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명복 논설위원, 김영희 대기자, 남정호 중앙SUNDAY 국제선임기자. [오종택 기자]

 “일본은 한국과 상황이 달랐다. 먼저 허용 여부를 결정할 당시 일본은 이미 재처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핵기술 확산에 대한 우려가 훨씬 덜할 때였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일본 처지로선 재처리 기술을 갖게 됐다는 게 불행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 재처리를 허용하면 핵무기를 개발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 아닌가.

 “나를 포함해 오바마 행정부 누구도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려 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럴 경우 어느 나라도 도와주지 않아 원자력 에너지 분야의 강국이 되겠다는 한국의 목표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선례가 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지만 재처리 기술 보유를 허용할 경우 다른 나라들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지금도 사우디아라비아·베트남·요르단을 비롯해 많은 나라가 이번 협상을 지켜보고 있다.”

 -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로는 핵무기를 만들 수 없다는데.

 “좀 더 큰 규모에서 실험을 해보고 경제성이 있는지, 비확산에 도움이 되는 기술인지를 확인한 뒤 결정하는 게 옳다. 그러고 나서 한국에 대해 예외를 인정할지 검토하자는 거다. 이 기술의 타당성이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예외를 인정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합당치 않다.”

 - 미국이 전략적 인내라는 명분으로 대북 문제를 무시하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한다는 게 기본 전략이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다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이 원하듯 북·미 간 대화가 핵보유국 간 협상이 돼선 안 된다.”

 - 존 케리 국무장관이 최근 불가침협정을 맺을 의향이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미국의 입장 변화인가.

 “아니다. 미국은 그간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를 이루면 여러 조치를 취해주겠다고 밝혀 왔다.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동북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북·미 관계 정상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 미국은 핵폐기물을 건식 저장소(dry cask storage)에 담아 처리하자고 주장하나 국토가 좁은 한국에선 마땅한 장소를 찾는 게 극히 어렵다.

 “한국과 미국 측이 현재 논의 중인데 원전 부지 내에 만들 수 있지 않나. 월성 원전에 이미 있는 걸로 안다. 건식 저장은 이미 검증된 기술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측은 파이로 프로세싱만을 원하는데 그렇게 되면 건식 저장 기술의 유용성이 저평가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재처리 기술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일본과 프랑스는 왜 계속 하는가.

 “미국과 영국 등 이미 10여 개국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려다 중단했다. 왜 그랬겠는가. 일본은 이미 너무 많은 매장비용을 투입해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서도 재처리를 관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의 사용후 핵연료를 받아다 재처리해 주고 수입을 올리고 있다. 프랑스가 재처리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 이란의 비핵화 전망은.

 “새로 들어온 이란 지도자들은 지난번에 비해 훨씬 현실적이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란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된 건 경제적 제재가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이란인들은 변화를 원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 제재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한국에 크게 감사하고 있다.”

 - 이란에선 효과적인 경제 제재가 북한엔 안 먹히는데.

 “이란에 경제적 압력을 가하는 건 쉽다. 이란은 인구가 많은 대국인 데다 외부와의 교류가 많았던 터라 국민들이 경제 제재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또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주변 대국도 없다. 반면에 북한은 인구도 적은 소국인 데다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별다른 요구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정권 붕괴와 국경지역의 혼란을 우려한 중국이 계속 지원하고 있어 경제적 타격이 훨씬 적다.”

 -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원하면서 동북아에 신냉전 시대가 올 거라는 우려가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모두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충분한 방어 능력을 갖추길 원한다. 일본의 움직임이 한국에 대한 위협이 되진 않는다.”

정리=남정호 중앙SUNDAY 국제선임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로버트 아인혼=미국의 비확산 문제 전문가로 클린턴 행정부 때는 국무부 비확산 담당 차관보를, 이번 오바마 정권에서는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를 지냈다. 그는 특히 이란과 북한 핵 문제에 정통하다. 북핵 문제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도 있다. 코넬대를 졸업한 뒤 프린스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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