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각된 핵 전 위기 |해상 핵 금 조약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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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 영 소 3국을 비롯한 62개국이 서명한 「해상 및 해저 핵 이용 금지 조약」은 초대국들 상호간의 출혈적인 핵 경쟁과 전쟁 위기를 한 걸음 더 냉각시켰다는데 큰 뜻이었다. 이와 동시에 미소에 의한 「세계 질서」의 고정과 통상 병기에 의한 국지전의 가능성은 보다 더 선명히 「클로스업」되어 간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겠다.
『해안선에서 19·3km 밖의 해상·해저에 핵무기 및 대량 파양 병기 배치를 금지』한 이 조약은 ①금지 구역의 한계 설정에 있어서는 소련 안인 「19·3km 밖」이 채택되고 ②검증방법은 미국 안인 「협정에 기초한」방식이 상호주의를 고집한 소련 안 대신 채택되었다.
69년3월 개최된 제네바 군축위의 문제 제거로 발단, 69년10월 미소 공동 제안의 형식으로 최종 초안이 제출된 바 있다.
그러나 69년 유엔 총회에서 많은 나라들의 비난을 사 다시 군축위로 반려되자 ①금지 구역인 「19·3km 밖」을 명기하고 ②검증 수속을 보다 확실하게 밝히고 ③대륙붕을 포함하는 한 국가의 해저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하는 개정안이 70년4월 제출되었다. 이 안이 작년 25차 유엔 총회에서 1백4대2표로 가결되고 지난 11일 다시 미 영 소 3대 핵 국가에 의해 조인됨으로써 이제 25개국의 비준서가 안보리에 접수되기만 하면 발동할 수 있게 되었다.
63년의 부분 핵 금 조약, 68년의 핵 확산 금지 조약과 더불어 이 조약은 명분이야 어떻든 이상주의적인 군축 조치임에 못지 않게 미소 두 초대국의 세계 전략이라는 「정치적 의의」를 보다 강하게 띠고 있다.
무엇보다도 해저에는 아직도 핵무기나 대량 파괴 병기가 배치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미소 두 나라를 제하고는 아무도 아직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 그리고 통상 병기를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조약이 실질적인 군축 조치는 될 수 없고 다분히 예방적인 전시 효과를 갖는 감이 없지 않다.
때문에 미소에 의한 세계 해양 개발의 과점 현상도 추리되는 가운데 프랑스 중고 이스라엘인도 등이 이 조약에 불응하고 있어 몇개의 난점을 안고는 있지만 또 하나의 「협상의 결실」이 맺어졌다는 사실만은 전쟁 지향적인 전후 시대를 청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풀이되고 있다. <유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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