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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제5화>「동양극장」시절⑪|박진(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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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렇게 「기생연극」이 최장기 공연의 기록을 세웠고 그 돈이 극장의 「나쓰가래」를 넘기는데 태반의 공을 세웠으나 돈에 몰렸던 주인홍군과 차홍녀만이 좋았을 뿐 고등신파로 자위하는 축은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마침 「호화선」을 조립해서 장기 항해토록 지시한 홍군이 그 항해상황을 시찰하러 항로를 더듬어 뒤따라 나가서 서울에 없었다. 그래서. 물실차기라 생각한 독견과 나는 이운방에게 술을 사 먹여 가면서 이번에는 기생이 몰락하는 연극을 쓰게 했다. 3막짜리로 첫 막에서는 호화롭다가 둘째 막에서는 잘못되어 기생도가에서 소리장단을 가르치고 3막에서는 선술집 목로만에 앉아 술구기를 잡는데 여기 찾아오는 동료기생은 아편장이가 되어 술청바닥에 버린 꽁초를 주워 훅훅 흙을 불어 털고는 엄지와 둘째손가락 끝으로 연기를 두어 모금 빤다. 그러다가는 발발 떨며 안주 굽는 화덕에 가서 손을 쬐다가 전에 동료였던 목로의 주모가 백동전 한푼을 눈치보아가며 내미니까 좌우를 핼끔핼끔 하면서 솔개미가 병아리 채가듯 해 가지고 콧물을 손등으로 씻으며 나가는 그런 따위의 연극을 했다.
동양극장의 연극은 의례 기생을 잘되게 하는 것이니까 첫날은 여전히 기생아씨가 많이 왔다. 막이 열리기 전부터 이 구석 저 구석 짝을 지어 몰려 앉아서 재잘거리며 담배를 피워대 객석이 뽀얗도록 연기가 자욱했다. 「금연」이라고 쓴 딱지를 5백장이나 붙여 놓았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공짜로 기생얼굴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재수 좋은 사람은 기생 옆자리에 앉아 살 냄새·분 냄새·향수냄새에 취해버려 대중위생이고 공중도덕이고 경고고 충고고 간에 요새말로 「고발정신」이란 아예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남자들은 극장분위기에 쑥 빠져 버리는 것이다. 그것저것 생각해 보는 일없는 아씨군은 개막신호인 「징」소리가 나자 액액 소리를 지르며 장차 전개될 기생의 미화된 세계를 보아라는 듯 좌우의 얼간이 남자들을 돌아보며 으시대고 뽐내는 것이다.
1막까지 잘 보았다. 2막에 가서는 모든 기생아씨들이 조용해지면서 서로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와는 반대로 종전까지는 땀흘리듯 아니고운 듯 잠자코 있던 남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혹은 픽픽하는 웃음소리도 들렸다.
3막으로 넘어가 앞서 선명한 장면이 나타나자 기생군중은 노기 찬 숨소리로 웅성거리더니 극이 진행될수록 소란해 지고 급기야는 고함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며 욕설을 퍼붓고 퇴장해버리는 패가 많이 눈에 띄었다. 결국 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객석은 남자들만 남았고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서는 향수 내만 풍겼다. 막이 내리자 우뢰와 같고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박수소리에 장내는 떠나가는 것 같았다. 남자들의 힘껏 손바닥이 아프도록 두들긴 박수였다.
우리들도 쾌재를 불렀고 분장실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지배인인 독견과 연출자인 나는 작자인 이운방을 데리고 전용차를 타고 명월관으로 갔다. 이 상황을 모르는 현관 「보이」는 우리에게 좋은 방을 선사했다. 그 날밤 세 사람은 기생은 부르지 않고 제일 간단하고 값이 헐한 3원짜리 상을 시켜놓고 형세를 살피고 있는데 술이 채 몇 순배 돌기도 전에 동양극장패가 왔다는 소식이 명월관 방마다 쫙 돌아서 그 연극을 본거 안본거 수십명이 우리 방으로 쳐들어와서 고함을 지르며 『그 각본 쓴 놈이 누구냐?』『당장 밟아 죽인다』등등 폭동이 일어났다. 「보이」란 「보이」는 다 몰려와서 진압하느라고 땀을 뺐다.
동양극장은 그 바쁜 바꿔치기에도 한 장 종이에 활판으로 찍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들어오는 사람에게 일일이 주었는데 그런 것을 볼 줄 모르는 아씨들이라 그 각본을 쓴 놈이 누구냐고 당장 내놓으라고만 한다.「프로그램」에 분명히「이운방작」이라고 했고 그 놈은 저희들 눈앞에서 고개도 안쳐들고 술만 넙죽넙죽 마시고 앉았는데 밟아 죽이게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른다. 계집 「여」 자 셋이 「간」 인데 수십 「여」가 아우성을 치니까 그를 당키 어려웠다.
사세가 현악해지며 당장 우리에게까지 「테러」나 실력행사를 할 급한 판이라 하는 수없이 이운방이는 미꾸리처럼 빠지나가 신도 제짝을 못 찾아 신고 야반도주를 했고 나머지 두 놈은 협상 끝에 그 중의 대표 몇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협상이란 기생 쪽에서는 내일로 그 연극을 집어치우고 다른 것을 하라는 요구였고 우리 쪽은 준비관계로 이들은 더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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