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버스 '묻지마 지원' 1조8195억 … 서울시, 늑장 감사 나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서울시 시내버스 업체인 H운수가 2011년 서울시로부터 버스운행 보조금으로 지급받은 액수는 290억원이었다. 하지만 이 업체가 버스운행에 실제로 사용한 액수는 288억원이었다. 보조금 2억원은 업체의 이윤으로 챙겼다. 정비인력 등을 산정된 기준보다 적게 고용하는 수법으로 보조금을 남긴 것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시내 66개 버스업체 대표이사의 2011년 평균 연봉은 2억815만원이다. 같은 기간 버스업체들은 3203억원의 적자를 봤다. 대규모 적자에도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버스준공영제 덕분이다. 서울시는 버스준공영제를 운영하며 미리 정해둔 기준에 따라 업체 대표들의 연봉을 지급한다.

  버스준공영제는 서울시가 운행 적자분을 버스회사에 보전해주는 제도다. 초기에는 서비스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작용이 부각되고 있다. 재정지원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서울시가 버스업체에 지급한 보조금은 1조8195억원에 달한다.

 보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서울시가 버스준공영제에 대한 자체 감사에 나섰다. 서울시 직접 감사는 2004년 7월 버스준공영제가 도입된 후 처음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일 “언론을 통해 버스준공영제에 대한 문제점이 계속 지적돼 온 만큼 시가 직접 준공영제를 점검해보자는 취지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보조금 산정 기준과 버스업체들의 보조금 사용 내역 등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필 예정이다.

 서울시는 유류비 등은 실비로 주고 나머지 비용은 별도로 산정한 ‘표준운송원가’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서울시는 업체 측과 버스운행에 들어가는 인건비, 보험료 등의 평균 비용을 산출해 표준운송원가로 정하고 있다. 버스 1대당 하루 평균 64만원을 책정했다. 여기에는 이윤(3.86%)도 포함돼 있다. 버스를 운행하기만 하면 이윤까지 꼬박꼬박 챙겨주다 보니 업체들은 적자가 나도 감차를 하지 않는다. 계명대 박용진(교통공학) 교수는 “경영진은 경영효율화에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노조도 감차 등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시의 재정지원액은 늘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보조금에 대한 관리·감독도 허술하다. 서울시는 실비정산 항목 외에 나머지 지급분에 대해 업체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조금을 실제 사용하는 액수보다 과다하게 받아가 업체 이윤으로 챙기는 회사도 생기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관리·감독은 허술하다. 지난 26일 발표된 H운수에 대한 서울시 시민감사 보고서는 “버스회사가 서울시 보조금을 명목과 다르게 사용하거나 회사의 적정이윤을 넘어서 이윤을 책정하고 배당금을 지급하더라도 용도 외 사용이라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지급된 보조금을 항목대로 사용하라는 규정이 없을뿐더러 구체적인 관리·감독 권한이 서울시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시의회 남재경 의원은 “시에서 보조금 사용에 대한 감사를 할 수 있도록 2012년 이미 조례를 개정한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고 감독을 제대로 안 하는 건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관리·감독이 소홀한 또 하나 이유는 버스준공영제의 운영원칙을 담은 협약서가 업체 쪽에 유리하게 작성돼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2004년 준공영제를 도입하며 협약서 작성을 버스업체들의 모임인 버스운송사업조합에 일임했다. 버스업체 측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다. 업체 측이 작성한 협약서에는 운송비용·사업이윤 보장은 물론 노선권을 업체 측에 영구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조승호 경영합리화팀장은 “업체 측의 반발이 있겠지만 협약서 변경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