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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으로 지구를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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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논쟁이 또다시 점화됐다.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공개한 북극해 빙하 사진이 그 도화선으로, 지난해보다 빙하 면적이 50% 가까이 넓어진 원인을 놓고 상반된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부 학자는 다시 ‘미니빙하기’설을 들고 나왔고, 지구온난화를 줄곧 주장해 온 대다수 학자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며 여전히 ‘지구의 지속적인 기온 상승’을 점치고 있다. 이런 논쟁은 결국 ‘탄소 배출에 의한 온실효과 이론’이 정말 과학적 확실성이 있는지 여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논란의 답을 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간의 명백한 ‘고의’에 의한 환경 파괴는 우리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인도의 ‘사르다르 사로바(Sardar Sarovar)’ 프로젝트다. 세계은행(WB)이 1985년에 금융을 제공한 이 사업은 인도 나르마다강(Narmada River)에 댐을 지어 200만ha의 불모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해 약 3000만 명의 거주민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한편 1450㎿ 규모의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시작됐다. 하지만 개발이란 이면 뒤엔 늘 어두운 그림자가 뒤따르는 법. 이 사업으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45배에 달하는 3만8000여ha의 수몰지역이 생겨나 245개 마을 4만1000여 가구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중요한 문화유적까지 소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그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겨우 목만 내놓은 채 댐의 높이를 낮춰 달라고 울부짖었다. 이 문제로 국내외에서 비난 여론이 크게 일자 세계은행은 추가 조사를 통해 사업 승인 당시 환경사회문제 대처에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사업자금 지원을 전격 철회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국제금융기구들로 하여금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고 금융을 제공할 프로젝트에 대해 자발적인 환경심사 기준을 마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출신용그룹(ECG)은 2003년 회원국의 지원사업에 대해 환경심사 의무가 명시된 ‘OECD 수출신용 환경권고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미국수출입은행(EXIM)·일본국제협력은행(JBIC) 등 각국의 수출입은행은 현재 환경심사를 담당하는 부서를 설치·운영 중이다. 한국수출입은행도 이런 환경심사 강화 추세에 맞춰 2004년부터 환경심사 전담부서를 만들었다. 국내 금융기관으론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조직이다.

 일례로 지난해 수출입은행이 2억8000만 달러의 금융을 제공키로 결정한 터키의 보스포루스해협 해저터널 건설사업의 경우 유럽개발부흥은행(EBRD)을 비롯한 국제상업은행들과 공동으로 사전에 환경심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당초 설계와 달리 요금소 등 관련 시설 고도를 7m 이하로 낮춰 이스탄불시 유적지의 경관 훼손을 최소화했고, 특히 고고학자 등 전문가를 건설현장에 상주시킴으로써 혹시 모를 고대 유물 발굴에 대비하기도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녹색금융이 강조되는 요즘 금융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는 이처럼 주민 이주나 문화재 소실, 노동환경 등 모든 환경적 요소를 사전에 제어하는 게 마땅하다.

 금융기관이 환경 위험을 제어하면 단순히 금융을 지원하는 것보다 큰 부수적 효과를 챙길 수 있다. 국제금융 커뮤니티에서 프로젝트의 환경 관련 신뢰성이 높아지고, 이른바 ‘적도원칙(Equator Principles)’을 지지하는 국제상업은행들과의 협조 융자도 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의 비난 가능성이 없어져 국제사회에서의 평판까지 좋아진다. 특히 우리나라가 지난해 녹색기후기금(GCF)을 송도에 유치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환경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설국열차’는 2014년 7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조절물질을 잘못 살포했다가 그 부작용으로 지구에 새로운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환경의 중요성을 무시했다가 사람들이 바글대는 꼬리칸에서 단백질 블록만으로 겨우 생명을 연장하는 그 하류층이 바로 나 자신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 지구라는 파란 별이 우리 미래세대까지 천년만년 사용할 공동의 자산이란 사실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