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유혈「데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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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4·15일,「폴란드」의 북부「그다뉘스크」,「그디니야」및「소프트」등 3개 도시에서는 노동자·학생·주부들이 물가고에 항의,「폴란드」민병 대와 유혈 충돌을 벌여 방화와 약탈을 자행한 끝에 쌍방에서 12명이 죽고, 1백50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폴란드」 정부는 16일 이「데모」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 전기한 3대 도시를 봉쇄하고, 통신 망·육로 및 공로 등을 차단했으며,「바르샤바」조약 군도 이「데모」진압을 위해 개인이 요청 됐다는 설이 보도되고 있어 사태는 여간 심상찮은 것으로 보여진다.
「폴란드」의 반정부「데모」는 1956년 6월28일「포즈난」사건이래. 지금까지도 종종 일어났던 것이지만, 모든 정보를 종합 해볼 때, 이번「데모」는「포즈난」사건 이후 처음 보는 큰 규모의 것임이 분명한 듯 하다.
이번 반정부「데모」의 발단은「폴란드」정부가 지난 12일 식품·연료·유류·식육 등 생필품 가격을 20% 내지 30% 인상 한데 항의하여 일어난 것으로 알려 졌는데,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주목되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첫째로 동구 공산 치하에서의 반정부「데모」는 일반적으로 생활과 직결되는 경제 문제로부터 발단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이전「포즈난」사건도 공장 노동자 대표들이 생활 조건의 개선을 요구 한데서 일어났으며, 동년 10월의「헝가리」사건도「사회주의 공업화」와 농민의「쿨호즈」화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농민의 반발에서 일어났다. 또 1953년 동독에서 일어난 반정부「데모」도 노동 생산 책임량(노르마)의 과다에서 일어났으며, 1968년의「체코」자유화 운동도「이윤제 도입」, 또는「기업의 자주 제 확대」등 경제 개혁을「느보트니」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보수파 관료들이 반대한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이것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 공산주의가 토착 한지 25년을 헤아리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동구 공산 각국의 계획경제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실증하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며,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가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둘째로 동구 공산권에서의 반정부「데모」는 비록 그 장소와 때를 달리하고 있지만, 1파, 2파, 3파격으로 파 상 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날의「포즈난」사건이나「헝가리」사건에 있어서는 이 때문에 처참한 유혈 비극이 연출되었고 막대한 희생자가 생겼었다.「포즈난」사건에서는 약 1천명이 살해되었고「헝가리」사건에서는 약 2만5천명이 살해되었다. 그러나「포즈난」·「헝가리」사건 이후에도 동구 도처에서는 계속 반정부「데모」가 그칠 사이 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지역에 새삼 민족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했고, 공산 독재와 통제에 반발하는 자유화 사상이 표면화한 것으로 보아 틀림은 없다고 하겠다.
소련은 일 찌기 동독 사건이래, 사건이 있을 때마다 직접 무력을 개입시켜 진압했다. 그것은「헝가리」·「체코」사태에서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특히 소련은「체코」사태 이후 이른바「브레즈네프·독트린」을 게양하면서 공공연히 동구 제국에 대한 무력 간섭을 양언 하고 있다.
소련은 현재「폴란드」에 2개 사단,「헝가리」에 4개 사단, 동구에 20개 사단, 그리고 「체코」에는 7만5천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으므로 동구의 자유화 운동은 그들의 탄압으로 좀처럼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동구의 자유화 사상은 지나간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그 아무도 말살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것은 자꾸자꾸 동구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계속 반기를 들것이다. 비록 지금의 단계에서는 그 운동이 한정된 것이요, 또 지금 당장에는 쉽게 진정한 자유를 쟁취할 수는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기필코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붕괴시키고야 말 것임을 예견케 하는 것이며, 여기에 자유 체제의 우위성을 다시금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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