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에『피치』…영주권 신청|마감한달 앞둔 재일 교포의 동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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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재일 교포의 협정영주권 신청 마감(내년 l월16일)까지 앞으로 한달. 실수마저 잡기 힘든 이들의 성분이 머지않아 명확히 판별되게 되었다. 협정영주권은 65년 1월17일에 효력이 발생한 한-일 양국간의 일본 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일본정부가 다른 재일 외국인에겐 없는 특별한 이익을 교포들에게 준 혜택이다. 65년부터 5년 동안에 재일 교포들은「대한국민 국민」의 자격으로 협정 영주권을 신청하게 되었는데 한국정부로서는 이것을 계기로 불투명했던 재일 교포들의 성격을 정리하려고 영주권 촉진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왔다. 【동경=조동오 특파원】
주일대사관의 집계에 의하면 협정영주권 대상자(58년 1월 이전에 일본에 입국 계속 거주자)의 총 수는 55만9천6백47명(일 법무성 집계)인데 그중 한국계가 28만5천1백59명, 조총련계가 27만3천9백76명 정도라고 보고 있다. 영주권 신청 유자격자수로는 한국계가 약간 우세하지만 한국정부나 재일 거류민단으로서는 이 기회에 협정 영주권의 이점을 살려 친 조총련계 또는 중립 계에까지 손을 뻗쳐 통칭 60만 교포의 과 반 확보를 목표로 정부에서 32만 불, 민단에서 일화2천만 원의 자금을 쏟아 전국적인 유세 포섭 공작을 벌여 앞으로 한달 동안 마지막 피치를 울리고 있다.
지난 11월말의 집계로서는 24만3천2백65명이 영주권을 신청했는데 이 가운데는 조총련계에서 약3만 명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전향했다. 조총련은 영주권 신청에서 오는 세력감퇴를 우려해서 일부 소수 열성 분자를 동원,「한국적」의「조선 적」변경 운동을 정점으로 영주권을 얻으면 ①병역 의무를 진다 ②재산몰수를 당한다 ③한일 양 정부의 묵계에 따라 전원 한국으로 송환한다는 등 무지한 교포들을 상대로 치열한 영주권신청 방해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영주권문제는 민단과 조총련의 세력 다툼과 같은 양상으로 변모했는데 조총련계 교포 27만3천9백27명중 열성분자 11만5천7백83명과 과거를 숨긴(밀항자로서 2차대전후 계속 일본 거주를 가장하고 있는)사람 8만2천1백93명을 제외한 7만5천1백 명에 대해서는 한국적 변경 후 영주권신청의 여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해방 전 한민족의 통칭은「조선인」이지만 실은「일본인」. 47년 5월 일본에서 외국인 등록 영이 시행될 때 비로소 외국인이 됐지만 당시는 통일된「조선인 연합회」밑에서 모두가 조선인으로 표기되었다.
50년 2월에 이르러 당시의 주일대표부는 이미 두 조각난 재일 거류민단 총 본부와 재일 조선인 총 연맹의 색채를 구분하기 위해 이미 독립한 대한민국 국민의 표시 방법으로 외국인 등록증명서의 국적 난의「조선」을「한국」으로 정정해 줄 것을 일본정부에 요청했다. 이 요청에 따라 약 반수의 민단 계 교포가 국적의 정 정을 실행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63년 12월까지「한국」이나「조선」은 단순한 용어라고 설명해 오다가 64년 10월 한-일 협정이 체결된 다음 세칭「통일견해」로서『한국은 국적이지만「조선」은 민족을 나타내는 일반적 호칭』이라고 국교 정상화 후 비로소 한국에 무게를 두었다.
해방 전부터 일본에 거주한 교포나 그 2세들에겐「한국」이나「조선」의 구별이 분명치 않았다.「조선」은 오래 전부터 낯익은 이름이고「한국」은 전후에 태어난 낯선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주일대표부가 주일대사관으로 바뀌고 고국에의 도항 권이 인정되어도 국적의 명칭에 신경을 쏟지 않고 무관심했던 교포들이었다. 오히려 일본을 조국으로 착각하고 일본에 거주권만 잡고 있으면 된다는 배짱의 교포가 허다했다.
영주권에는 지금까지 불안정했던 재일 교포의 법적 지위에 대한 갖가지 보장이 붙어있다. 특별 재류허가의 불편했던 절차가 없어지고 자녀의 법적 지위 및 교육권·재산보호·여행의 자유 등 숱한 특전이 뒤따랐다. 대부분 무지의 탓으로 독립조국의 혜택을 모르고 살아온 교포들이 결국은 무지에서 헤어나고 조총련 간부들마저 곁으로는 영주권반대운동에 나서면서 뒤에서 영주권을 신청할 만큼 교활하기도 했다.
한국대사관이나 민단 측에서는 12월말까지 1만5천명, 마지막고비에 이르러 다시 1만5천명은 더 영주권을 신청하리라고 추산하여 신청마감까지 28만 명의 교포가 대한민국의 보호 밑에 들어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총련으로서는「법적 지위」에 신경이 쏠린 재일 교포들의 영주권신청 촉진이 몹시도 못마땅했다. 이래서 허위선전과 방해 공작으로 내놓은 것이 외국인 등록증, 국적 난의「한국」을「조선」으로 바꾸는 운동이다. 복강 현 전천 시에서 비롯된 국적표시변경운동 전국 혁신시장·정장들을 포함해서 42개 시정에서 1만5천26명에 이르렀으나 사무착오란 흠이 있는 행위만 골라 2천3백66명이 정정됐다. 일 법무성은「한국」에서「조선」으로의 변경은 모두 본성의 사무허가를 받으라고 통고했으나 혁신 계 시장들은 법무성의 행정명령이나 상관인 현지사의 통보를 무시하고 조총련의 최후의 술책을 받아 들였다.
조총련은 일본 매스컴의「혁신영합」경향을 교묘히 이용, 소수에 불과한 국적 정 정을 대대적으로 선전, 연일 신문에 등장시켰다. 일본 정부는 법무성의 지휘권을 거부한 혁신 시장들의 행정권 행사를 무효화 할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외국인이면서 계속 일본에 거주하기를 희망하는 재일 교포의 영주권 문제는 일본 국내에서 한국계와 조총련계의 교포 쟁탈전과 같은 혹심한 싸움으로 번졌다.
한국정부와 만단 측의 영주권 촉진을 위한 PR방법에도 문제는 있었다. 예컨대 일본 국내 모 TV에서 방영한 프로의 방송 시간이 나빠 시청률이 최저였지만 예산만 소모하는 헛수고도 있었다. 내년 1월16일 이후엔 영주권의 특전을 누릴 교포와 조총련 지지로 한국민 임을 거부한 교포로 대별되지만 영주권을 신청치 않았다고 해서 곧 나머지는 모두 조총련계라고 못을 박을 수 없는 것은 6만으로 추산되는 무자격·밀항자의 처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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