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산세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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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여자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사건이 있었다. 그「새디스틱」(변태적) 한 행동은 범인의 상식을 절한다. 얼굴은 인간의「심벌」이다.「드라큘라」형의 인간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슨 관상가가 아니라도, 인간의 얼굴은 그만큼 중요하다. 하물며 여자의 얼굴에 불을 지르려는 심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살벌한 세태와 살벌한 애욕의 면모가 새삼 돋보인다.
「호세」는 독점할 수 없는「카르멘]을 사이에 두고 연적에게 결투를 청한다. 그래도 분방하게 놀아나는「카르멘」을 끝내는 죽여버린다. 젊은「베르테르」도 마찬가지이다. 권총을 빼어들어 방아쇠를 당긴다. 무슨 변애지상 주의자를 찬미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느 쪽이 더「로맨틱」하냐는 반문을 하려는 것이다. 이성간의 모든 사랑이 비극으로, 그래서 죽음으로 끝나라는 법은 없다. 조물주는 그 때문에 인간에게 이성과 인내와 의지를 준 것이다. 게다가 망각의 기능까지도 불어넣어 주었다.
「힌두」교의 인간 창조 설엔 이런 설화가 있다. 신은 여자를 만들 적에『꽃의 아름다움, 새의 노래 소리, 무지개의 칠 색, 철 풍의 부드러움, 파도의 웃음, 양의 온순함, 여우의 교활 함, 구름의 고집, 소나기의 변덕 등』을 추려서 그것을 인체에 짜 넣었다. 그런 아내를 얻은「힌두」교의「아담」은 행복했다. 이들 부부는 아름다운지상을 뛰놀며 놀았다.
그런데 며칠 후「아담」은 하느님 앞으로 찾아가서『이 여자를 어디로 보내주십시오. 도무지 함께 살 수 없습니다』고 애원했다. 하느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며칠이 못 가「아담」은 다시 하느님을 찾아가『다시 그 여자를 돌려주십시오』라고 애 소 했다. 그러나「아담」은 또 그 여자와는 함께 살수가 없었다. 다시 헤어진다. 이번엔 또 쓸쓸했다. 다시 만났다. 또 함께 살수가 없었다. 또 헤어진다.
하느님은 결국「아담」의 확약을 듣고 다시 만날 것을 허락했다. 좋건 나쁘건 그 여자와 운명을 함께 하라는 엄명이었다. 증오와 사랑은 종이 한 장사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할 때엔 금수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은 모든 생물 중에서 유독 맑은 이성과 판단과 자제력을 갖고 있다. 사랑의 감정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세태가 각박할수록, 물질주의가 우선할수록, 인간의 가치도 오로지 즉물적으로 셈을 맞추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사랑은 따뜻한 심장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피부와 쩔렁거리는 금속에서 독「개스」처럼 발생하는 것이다. 심장이 없는 세정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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