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탈출 이끄는 대조적 두 首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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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할 때 구원투수로 창업자와 전문경영인 중 누가 더 적합할까. 최근 경영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한 신원과 새한의 관계자들은 "누가 더 회사에 대한 애정과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강한가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는 (주)신원의 박성철 회장은 최근 간부들과의 저녁모임에서 "회사가 어려워져 회사를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밤잠을 설친다"며 "남아 있는 사람들은 운동화 끈을 더욱 졸라매야 한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어김없이 확대 간부회의를 주재하는 박회장은 그 자리에서 경영상황을 꼼꼼히 챙긴다. 박회장이 수첩을 꺼내 들고 해외공장 건설 일정이나 사업부의 목표 경영치를 체크할 때는 사업본부장들은 긴장한다.

박회장은 신원이 1998년 워크아웃 기업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줄곧 대표이사 회장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회장은 갖고 있던 회사 지분을 몽땅 회사에 무상 증여해 신원의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채권단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박회장 이외의 대안이 없다"며 박회장에게 경영권을 그대로 준 것이다.

박회장은 회사 매각의 전권도 갖고 있다. 박회장이 지정한 인수 희망자에게 우선 회사매각 협상권을 주겠다는 것이 채권단의 입장이다.

신원은 채권은행단과의 약정대로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워크아웃 첫해부터 5년째 영업 이익을 내고 있고 2001년 9월에 워크아웃 졸업 전 단계인 자율추진기업이 됐다.

신원에 파견 나온 외환은행의 박권순 자금관리 단장은 "1조원에 이르는 자본금을 감자하면 조만간 회사를 매각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인수 희망업체와 협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크아웃 기업인 ㈜새한은 신원과는 달리 오너가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영 정상화의 문지방을 넘는 단계에 접어 들었다. 새한의 사주였던 이재관 전 부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지분을 모두 포기하고 2000년 12월 회사를 떠났다.

2000년 5월 워크아웃 기업이 된 새한은 지난달 말 2기 전문경영체제를 출범시켰다. 2년여 회사를 이끌었던 강관 사장이 물러나고 새한의 전신인 제일합섬에 입사해 줄곧 새한에 몸았던 박광업 전무가 사장 자리에 올랐다.

올 1월 초 채권단이 실시한 사장 공채 면접장에서 그는 "나는 다른 경합자처럼 직장을 얻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다"며 "이른 시일 안에 워크아웃을 졸업해 새한 출신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고 심사위원 6명 중 4명의 신임을 얻어 새한의 새 사령탑이 됐다.

그는 채권은행단과 출자전환 줄다리기를 하면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하고 거래선들이 워크아웃 기업의 임원이라며 홀대할 때도 "빚 많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 죄인"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각 사업부장에게 경영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또 미국. 독일 등지의 해외 법인 4곳은 분사해 독립시키는 한편 베트남 사무소를 폐쇄하는 등 구조조정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김용환 산업은행 기업개선팀장은 "새한의 빚이 7천억원 규모에 이르지만 모든 사업부가 흑자기반을 갖춰 경영 정상화의 기틀은 마련됐다"고 구조조정 성과를 평가했다.

박사장은 이달 말까지 실적이 부진한 본부장급 임원 4명과 간부들의 사표도 받을 예정이다.

그는 "올해 공장부지 등을 팔아 1천억원 규모를 갚고 수익성이 좋은 필터사업 등을 확장하면 내년 말께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영정상화의 의지를 밝혔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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