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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선진화법 앞에 겸허히 옷깃 여미자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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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우리는 ‘이 법’ 앞에 옷깃을 여미고 법의 오용·남용·악용이 없도록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지난 3월 7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황 대표가 말한 ‘이 법’이란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이다.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이라 부르는 그 법이다. 과반 의석 이상의 정당이 있어도 단독으로 예산안이나 법안을 처리할 수 없도록 제동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게 선진화법이다.

 그러던 새누리당이 요즘엔 선진화법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선진화법을 가리켜 ‘국회마비법’이라고 불렀다.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은 ‘신라시대의 화백제도 같은 법’이라고 했다. 화백제도 같은 만장일치법이란 뜻이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선진화법이 아니라 후진화법”이라고 깎아내렸다.

 선진화법에 대해 위헌 소송을 제기하려는 움직임까지 감지된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24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 “선진화법은 헌법의 다수결 원칙에 정면 위배된다”며 “하루빨리 법이 개정되든지 헌법 제소가 이뤄져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도 이날 위헌 소송을 거론했다. 심지어 선진화법 앞에 옷깃을 여미자고 했던 황우여 대표마저 기자들에게 “결산·법안 처리 등에서 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악용 사례들이 나타난 만큼 보완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될 무렵 치러진 지난해 4월 총선에선 원래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었다. 2010년 지방자치단체장선거, 2011년 4월 분당을 보궐선거, 같은 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같은 승부처에서 모두 야권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소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새누리당이 선진화법 통과에 앞장섰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그런데 ‘의외로’ 다수당이 되자 새누리당은 그간 서서히 선진화법에 대한 입장을 바꿔 왔다.

민주당이 “야당의 협조 없이 (국회 운영이)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겠다”(전병헌 원내대표)고 공언하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고민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주도해 법안을 통과시켜 놓고 이에 대해선 아무런 해명도 없이 위헌 운운하면서 손을 대겠다는 자세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민주당을 향해 “영원한 야당도, 영원한 소수당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이 말은 지금의 새누리당에도 유효하다. 언젠가 소수당이 되면 그땐 또 어떻게 할 텐가. 선진화법을 탓하기 전에 먼저 대야 협상력과 정치력부터 키워야 한다.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