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미래] 고유가 시대 에너지 절감의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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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고유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때에 에너지 낭비는 경제에 주름살을 더 깊게 만든다. 첨단 과학기술은 에너지 낭비도 최소화할 수 있다.

다양한 신기술로 에너지 낭비의 주범을 잡고 있는 현장을 집중 조명했다. 다음은 빌딩 소유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알아둬야 할 상식.

#빌딩 소유자에게 가장 무서운 적=냉.난방 배관을 흐르는 물 속에 들어 있는 박테리아와 칼슘이다. 이들은 냉.난방 배관을 갉아 먹거나 구멍을 막아 막대한 에너지를 축낸다.

배관을 삭게 해 뭉텅이 돈을 들이도록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빌딩주들은 제대로 된 대책이 어떤 것이지 잘 모른다. 이렇게 낭비되는 에너지는 연간 20조원 정도다.

#화공약품상의 대목=봄철. 대부분의 빌딩과 공장들이 맹독성인 강염산 수백ℓ로 냉.난방 열교환장치를 씻어내는 때이기 때문이다. 청소에 쓴 염산은 어디에 버리는지 재활용하는지는 청소한 사람만 아는 비밀이다.

50여개의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빌딩 주인은 냉난방 배관 속 박테리아나 칼슘이 두렵지 않다. 환경운동가들이 어느 날 들이닥친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배관 물 속의 적(?)들과 몇년간 전쟁을 한 끝에 최근 완전한 승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염산으로 청소할 필요도 없어졌다. 컨설팅은 ㈜애큐랩의 심상희 박사팀이 맡았다.

박테리아 중에는 강한 황산을 만드는 놈이 있다. 냉난방 배관 속에 살며 섭씨 80도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이 박테리아는 황산을 만들 때 나오는 열로 번식을 한다.

배관은 쇠든 스테인리스든 간에 강한 황산 세례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구멍이 뚫려 버린다. 이런 박테리아 때문에 멈춰서는 공장이 부지기수다.

배관 속에 사는 레지오넬라균 등 또 다른 여러 미생물들은 코 같이 미끈미끈한 점막을 만들어 배관에 달라붙고 결국 구멍을 막기도 한다. 레지오넬라균의 경우 치명적인 질병을 만들기도 한다. 미생물 등살에 빌딩 관리자들이 녹아나는 이유다.

신세계측은 미생물이 타 죽도록 산화제를 사용했다. 피부 상처를 과산화수소로 소독하는 원리나 마찬가지다.

신세계건설 유병덕 과장은 "보통 냉.난방용 배관의 미생물 살균력을 높이면 배관이 산화제 때문에 덩달아 삭고, 배관 부식을 줄이려고 하면 미생물이 번식하는 바람에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산화제가 아닌 독성 물질로 살균을 하면 미생물이 얼마 안가 내성이 생겨 약효가 듣지 않는다.

심상희 박사팀은 배관 부식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미생물을 깨끗하게 태워 죽이는 화학물질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신세계에 처음으로 적용했다.

배관 안의 물에 녹아 있는 칼슘은 차거나 뜨거운 열이 서로 교환되는 열교환기에 닿으면 알갱이가 돼 달라붙는다. 배관에 칼슘이 0.6㎜ 쌓이면 기름이나 전기가 20~30% 더 든다. 신세계측은 이 칼슘이 덩어리로 뭉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염산 청소도 안 하고, 배관이 녹슬 염려도 하지 않는다.

칼슘이 덩어리가 돼 배관에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것은 미세한 칼슘 결정 구조를 이용한다. 아주 작은 결정은 서로 붙어야 크게 자라게 되는데 서로 붙는 모서리에 미리 칼슘이 붙지 않는 다른 물질을 붙여 둔다.

그럼으로써 칼슘끼리 못 붙게 한다. 그렇게 되면 칼슘은 계속 물에 녹아 있는 상태가 된다. 찰흙 덩어리를 비닐로 싼 뒤 서로 붙이려고 하면 붙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에는 또 국내 어떤 곳에도 없는 이색기기가 냉장식품 진열장용 냉동압축기에 달려 있다. ㈜헬쯔테크가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냉장 진열장의 전기절약시스템이다.

이 전기절약시스템은 냉동압축기의 전압을 조절해 전기를 절약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평상시의 전압이 2백20V인 것을 필요량에 따라 1백50V로도 떨어뜨린다.

냉동압축기의 압력을 파악해 거기에 전압을 맞추는 것이다. 기존 기술은 단지 냉장고의 전원을 자동으로 끄거나 켜는 것만 반복해 에너지 절약 정도가 미미했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는 이외에도 남들이 하는 에너지 절약시스템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밤에 얼음을 얼렸다가 낮에 사용하는 빙축열시스템, 오수를 정화해 다시 쓰는 중수도, 환기 등에 사용하는 공조시스템은 당연히 가동 중이다. 이런 다양한 에너지 절약기술을 50여개 점포에 적용해 연간 30억원 정도의 에너지 비용을 줄이고 있다.

3천 세대인 수원 영통지구 황골주공아파트도 보일러 배관에 녹과 칼슘이 쌓이지 않는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지역난방공사에 따르면 이렇게 하기 전에는 난방손실, 보일러 염산 세척비 등을 합해 연간 1천1백여만원을 들여야 했으나 지금은 배관보호제 투입 비용 3백만~4백만원만 들이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 가구당 연간 1천~2천원을 들여 아파트의 배관 수명을 반영구적으로 늘리고, 에너지 비용도 크게 낮추고 있는 것이다. 염산 청소도 안해 환경오염도 시키지 않고 있다. 일석삼조인 셈이다.

정부에서는 고유가 시대마다 단골로 내놓는 '자동차 10부제'나 '한등 끄기'등의 운동에 앞서 '과학적인 배관 관리'를 주요 정책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미국.유럽 등 선진 각국은 에너지 절약의 주요 정책을 배관 관리로 전환한 지 오래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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