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청부살해 사건’ 주범 윤길자(68·여)씨. 윤씨는 2002년 여대생 하모(당시 22세)씨를 청부살해한 혐의로 2004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007년 7월부터 올 5월까지 형집행정지 3회와 연장 15회를 허가받았다. 그의 ‘합법적 탈옥’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검찰 공소사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서울서부지검 형사 5부(부장 김석우)는 윤씨의 주치의인 서울 세브란스병원 박모(54) 교수를 허위진단서 작성·행사 및 배임수재 혐의로 16일 구속 기소했다. 박 교수에게 1만 달러를 건넨 윤씨의 남편 류원기(66) 영남제분 회장도 함께 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2007년 7월 윤씨가 세브란스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윤씨는 당시 수술을 이유로 1차 형집행정지를 허가받은 뒤 6번이나 이를 연장했다. 특히 2008년 10월 박 교수는 ‘수감생활은 암의 재발은 물론이고 환자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는 소견을 적었다. 2009년 2월에는 34개의 외국 문헌을 인용한 논문식 소견서까지 제출했다.
윤씨는 세브란스에서만 38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이 중 박 교수가 관여한 것은 23건. 그는 윤씨를 외래진료나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원시키는 특혜를 제공했다. 윤씨는 ▶형집행정지 기간 중 자택에 머물다가 ▶병원 입원 4일 뒤 연장 신청을 하고 ▶이틀 뒤 심사를 거쳐 연장이 결정되면 ▶이튿날 다시 퇴원하는 수법을 반복했다.
2009년 12월 2차 형집행정지를 받게 되자 이들의 범행은 더 대담해졌다. 이듬해 7월 7일 ‘건강상태가 매우 호전되었다’는 진단서를 보고 류 회장은 (이런 것 말고) 좀 제대로 된 진단서를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만인 8일 ‘당뇨·압박골절·백내장 등으로 건강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아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서가 발급됐다. 내분비내과·신경외과·안과에선 ‘더 이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협진 소견을 냈으나 결론은 정반대로 났다. 올 2월 세브란스의 장기재원환자관리위원회가 윤씨의 입원을 거절하자 박 교수는 직접 병원장을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발급한 최종 진단서에는 유방암·파킨슨증후군·불면증 등 병명이 12개에 달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교수가 발급한 진단서 29통 대부분이 과장됐으나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법리상 명백한 3통에 대해서만 허위진단서작성죄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계좌 추적 결과 류 회장은 2011년 8월 8일 직원에게 2만 달러 환전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튿날 류 회장이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한 기록과 세브란스 인근식당에서 2인분을 카드 결제한 사실이 발견됐다. 그날 박 교수는 병원 내 은행에서 본인 소유 계좌에 1만 달러를 입금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 외에도 의심스러운 돈이 다수 발견됐으나 대부분 현금으로 입출금돼 규명이 불가능하다”며 “두 사람은 아직까지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류 회장은 2005년부터 올 1월까지 영남제분의 법인자금 15억여원, 사료 판매 계열사 자금 65억여원, 부동산 임대회사 계열사 자금 6억여원 등 총 87억원을 빼돌려 보험료·세금·대출 상환 등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류 회장은 2010년 3월부터 올 1월까지 해당 자금으로 1일 평균 50만원씩 총 2억5000만원의 입원비를 결제했다. 당초 류 회장은 윤씨와 위장이혼설이 돌기도 했으나 서류상 혼인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민경원·구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