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게임」 맞는 바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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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건전한 「레크리에이션」이라고 불리는 바둑은 우리 나라에서 점차 그 인구가 늘어가고 있다. 몇 년 전 1백만명을 헤아리던 것이 이제 2백만명으로 추산되기에 이르렀다.
바둑 두는 학생치고 말썽 일으키는 사람 없고 내성적인 성격까지 고쳐진다고들 말한다. 지난번 전국 고교생 바둑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우리 세대는 폭력을 쓰고 싶기도 한데 바둑판 위에서는 마음대로 젊음을 발산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가을 바둑「팬」들의 관심의 초점은 중앙일보주최의 왕위전을 비롯, 국수전(동아일보) 패왕전(서울신문) 명인전(한국일보) 등 우리 나라 네 개의 「빅·타이틀」을 모두 석권, 한번도 내놓지 않은 김인 7단이 또다시 전 「타이틀」을 방어할 것인가에 쏠려있다.
왕위전 패왕전 명인전 등에서는 이미 조남철 8단이 도전자로 결정되었고 국수전에는 조 8단과 김수영 5단과의 도전권을 다투는 1국이 남았을 뿐이다. 만약 이 대회에서 조 8단이 승리하면 조 8단은 한꺼번에 네 개의 「빅·타이틀」의 도전자가 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렇게 된 결과는 우리 바둑계를 위해 좋지 않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팬」들은 김인 왕위를 타도할 기사가 젊은 층에서 나와주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아직 김 7단, 조 8단을 뒤따를 기사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 8단은 금년 들어 운이 겹쳐 각 「타이틀」에서 좋은 성적을 냈었다. 왕위전 본선에서는 정창현 5단과 4승 1패의 동률을 이뤄 재 대국을 벌였는데 조 8단은 왕위전에서 한번도 정 5단을 이겨보지 못했던 「징크스」를 깨고 도전권을 얻었었다.
그 밖의 기사로는 강철민 4단이 조 8단과 같이 전 「타이틀」의 본선에 올랐지만 좋은 성적을 못 얻었고, 국수전에만 출전했던 윤기현 6단은 의외로 부진, 「시드」조에도 남지 못하고 탈락했다.
지난 봄 일본에서 수업하고 귀국한 하찬석 4단(군복무 중)이 아직 공식 대국에는 한번도 출전하지 않았지만 「다크·호스」로 기대를 받고있는 정도.
김인 7단에 대한 각 「타이틀」의 도전승부는 오는 30일 열리는 조남철 8단과의 왕위전 도전 5번기 제1국을 선두로 11월, 12월 사이에 갖기로 되어있어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있다.
이 밖에 바둑계 행사로는 오는 11월 2일 제2회 한일 「프로」 기사교류대회가 서울에서 열려 김인 7단, 김익영 5단, 김재구 5단 등이 대표선수로 일본 「프로」기사와 대결케 되고 11월 25일에는 「아마추어」 동양 3국 대회가 동경에서 열릴 예정이다.
최근 일본바둑계에는 「후지사와·히데유끼」(등택수행) 9단이 제9기 명인전에서 임해봉 명인으로부터 「타이틀」을 빼앗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명인전은 상금만 3백 50만원에 대국료까지 합치면 5백만원이 넘는 일본 최대의 「타이틀」. 초대명인이었던 「후지사와」 9단은 도전 7번기에서 4승 2패로 임 9단을 꺾어 8년만에 「타이틀」을 되찾았다.
4, 5, 6, 8기의 명인이었던 임해봉 9단은 이제 본인방 「타이틀」만 남은 셈이다. 명인전 이외의 「타이틀」전은 아직 본선이 열리고있는 중인데 제8기 10단전(대죽영웅)에는 임해봉 등택수행 교본우태랑 등이, 제17기 왕좌전(등택수행)에는 대죽영웅 대평수삼 판전영남 등택붕제 등이 유리하게 진행되고있다.
일본 명인전의 결과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한국 기전과 비슷한 점이 많았었다. 65년 젊은 임해봉이 「사까다」로부터 명인을 뺏은 직후 한국에서는 김인 7단이 각 「타이틀」에서 조남철 8단을 꺾고 세대교체를 이루었었다.
68년 고천격 9단이 임 9단을 이겨 명인이 되었을 때는 한국에서는 조 8단이 김 7단과의 대국에서 제1기 명인이 되었던 것인데 이번 일본 명인전의 결과가 또 한국 「타이틀」전에 작용할 것인가가 주목을 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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