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보면 공짜 음악, 돈 내면 더 빠른 서비스 제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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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호 28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스포티파이 공동창업자 겸 CEO 다니엘 에크를 “음악은 영혼의 경험이며, 그 가치는 지켜져야 하고, 창작자는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 평했다. 스포티파이의 유료 가입자 수는 600만 명에 이른다. [블룸버그뉴스]

1980년대, 그러니까 중고생 시절 내 으뜸가는 오락은 라디오 음악프로 듣기였다. 좋아하는 곡이 나올 때마다 이를 녹음해 ‘애청곡 카세트 테이프’를 만들곤 했다. 친구 생일 선물은 으레 직접 녹음했거나 레코드점에 의뢰해 제작한 사제 카세트 테이프였다. 내 평생, 대학 1학년 때 받은 핑크색 워크맨보다 더 가슴 뛰는 선물은 없었다.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16>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공동창업자 다니엘 에크

어느 날 CD라는 것이 등장했다. CD플레이어를 두어 개 갈아치웠을 때 드디어 MP3플레이어(MP3P)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을 통해 MP3P에 음악을 다운로드받았다. MP3P는 음악을 듣고 소유하는 방식뿐 아니라 시장 자체를 변화시켰다. 선두에는 애플의 아이팟과 온라인 시장 ‘아이튠스’가 있었다. 하지만 그늘도 커, 음악계는 불법 다운로드로 몸살을 앓고 사용자들은 저도 모르게 법을 어기곤 했다. 2006년 덴마크의 한 신생기업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7년이 지난 지금, 적어도 음악계에서는 이 회사를 제2의 애플로 여긴다.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Spotify)’다.

8세 때 프로그래밍 익혀
스트리밍(streaming)이란 콘텐트 파일(음악·영상 등)을 PC나 MP3P 같은 기기에 통째 내려받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만큼만 그때그때 흘려 받아 소비하는 것이다. 파일 자체를 소장하는 것이 아닌 만큼 다운로드 방식에 비해 훨씬 간편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덕분에 스트리밍 방식은 기존의 다운로드 시장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기회를 놓칠세라 구글·애플·아마존 할 것 없이 이 시장에 속속 진입 중이다. 하지만 스포티파이를 따라잡기는 힘들다. 올 3월 기준 이 회사의 전체 가입자 수는 20개국, 2400만 명에 유료 가입자는 600만 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스포티파이에는 이제 갓 서른이 된 천재 창업가 다니엘 에크(Daniel Ek)가 있다.
5세 때 처음 PC를 다룬 에크는 8세 때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14세 때 학교 컴퓨터실에서 웹 페이지 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도 들어가기 전에 그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에 다니던 2005년 두 번째 창업을 했다. ‘어드버티고’라는 웹 광고회사였다. 몇 달 뒤부터는 패션 전문 소셜 네트워크 ‘스타돌’의 최고기술경영자(CTO)를 겸임했다. 그는 탁월한 기술력과 남다른 경영 감각으로 단시간 내 스타돌 사용자 수를 1억 명으로 늘렸다. 2006년에는 당시 세계 최대 파일 공유 사이트이던 ‘유토렌트’ CEO로 영입됐다. 이동시간을 아끼려 스톡홀름 여기저기에 얻어놓은 세 채의 아파트를 오가며 생활했다.

여유 없는 삶, 그리고 너무 일찍 손에 쥔 부와 명예는 그를 환멸에 빠뜨렸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2012년 1월 표지 인물로 선정된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페라리를 팔고 아파트들을 정리한 뒤 부모님댁 근처 통나무집으로 이사했다. 기타 연습을 하며 아예 프로 음악가가 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런 그의 앞에 또 한 명의 백만장자가 나타났다. 에크보다 열세 살 많은 마틴 로렌존(43)이었다. 로렌존 역시 창업한 회사의 경영에서 막 손을 뗀 뒤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친해진 둘은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두 남자 다 기술에 능통하고 음악을 사랑했다. 어느 날 스포티파이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만일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음악이 담긴 아이팟이 있다면?’

이들이 설계한 스포티파이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랬다. 무료 사용자는 공짜 음악을 듣는 대신 간혹 광고에 노출된다. 광고주들은 특정 음악이 재생될 때 광고를 내보냄으로써 정교한 타깃 마케팅을 할 수 있다. 유료회원에게는 광고 없이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저작권자에게 일정 비율의 저작권료를 지불한다.

트래픽 해결하려 이용자 PC 활용
결국 이들은 2006년 4월 스포티파이를 설립했다. 에크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곧 깨달았다. 무엇보다 음원 사용권 확보를 위해 수많은 음반사들과 협상을 벌여야 했다. CEO인 에크가 직접 나섰다. 음반사들을 만나 불법 다운로드에 빼앗긴 시장과 멀어진 팬들의 관심을 되찾아 주겠다고 설득했다. 선금 지불은 물론 유니버설·워너 같은 주요 음반사들에는 아예 회사 지분 2~6%를 가져가라고 제안했다. 2008년 가을에야 큰 협상들이 끝났다.

기술적 도전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엄청난 트래픽을 감당할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유토렌트처럼 사용자 PC를 활용하기로 했다. A라는 사용자가 스포티파이에서 특정 음악을 재생하면 그의 PC엔 해당 곡의 파일 사본이 저장된다. 사용자 B가 같은 음악을 찾을 경우 검색엔진은 A의 PC에서 이를 찾아내 B에게 제공한다. 이런 방식으로 데이터 처리 속도를 한껏 높이고 서버 비용은 최소화했다.

또 하나, 에크는 광고주와 음반사들에 이제껏 본 적 없는 고도의 마케팅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사용자의 연령·지역·취향은 물론 특정 음악이 많이 재생되는 시간대·장소, 트위터 내용과 검색 기록까지 분석했다. 덕분에 스포티파이는 빅데이터와 관련해 독보적 기술을 갖게 됐다.

2009년 초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2011년 9월에는 페이스북이 동맹을 제안했다. 이를 등에 업고 미국 시장에 진출해 단숨에 미주 3위 음악 스트리밍 업체가 됐다. 지난해 말에는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3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1억 달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스포티파이에 대한 음악계의 시각은 아직 이중적이다. “스포티파이가 지불하는 저작권료가 너무 짜다”는 비난이 끊이질 않는다. 한편 지난해 세계 음악 산업 매출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선 데에는 스포티파이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옹호론도 있다. 불법 다운로드가 줄었고, 음반사는 정교한 마케팅 데이터를 손에 넣게 됐으며, 뮤지션은 팬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타임은 그가 특별한 건 단지 엄청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그것도 잘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이는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다. 혹 내겐 ‘해야 할 일’ 때문에 포기한 그 무엇이 없는가. 자문(自問)하고 자답(自答)하기 좋은 가을 초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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