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피곤한가, 이 그림 어딘가 불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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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훈의 유화 ‘흰머리’. 227.3×181.8㎝. 춥고 서늘한 느낌의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고목 같은 이 물체는 휘날리는 흰머리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청산리 벽계수 같은 절경에서 담배 피우는 남자의 음험한 뒷모습이 자아내는 불온함,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낚시질하는 고즈넉한 장면 뒤에 아파트촌과 전신주를 확인했을때의 씁쓸함, ‘쨍’하고 번개 치는 듯한 장관이 알고 보면 헬기에서 시위 진압을 위해 쏘는 물대포인 걸 확인했을 때의 헛헛함-.

 공성훈(48) 성균관대 미술학과 교수의 대형 풍경화가 자아내는 불편함이다. 화가는 이를 ‘사건으로서의 풍경’이라고 명명했다. 이른바 피로사회, 위험사회의 풍경화다. 공씨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다. “더 이상 새로운 게 없을 것 같은 회화에서 혁신을 이뤘다”는 국제 심사위원단의 상찬이 쏟아졌다.

 12일 만난 공씨는 “우리 미술은 비엔날레용과 아트페어용으로 나뉘어 가는 듯하다. 나는 양쪽 모두로부터 소외돼 있는 화가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30년 만에, 즉 고교 졸업 후 처음으로 상이란 걸 받았다. 그간 공모전에 응모해본 적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내 작업에 반응이 있기는 한가 싶었는데 수상을 계기로 내 방향이 틀린 건 아니었구나 확신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공성훈

 공씨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화가다.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졸업 후 서울산업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고는 다시 서울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나왔다.

 “중학교 1학년 미술반 시절부터 줄곧 그림을 그렸다.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뭘 했나 싶더라. ‘체질개선’ 같은 걸 하고 싶었다. 물질을 다루는 미술을 하는 만큼 공학을 하자,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걸 해 보자, 다른 것, 답이 있는 것을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는 이 같은 편력 덕에 색색의 블라인드 설치, ‘자판기로 작품 팔기’ 같은 발칙한 개념미술을 선보였다. 캔버스에 잼을 발라 썩힌 곰팡이 그림(1994), 진공청소기에서 뽑은 먼지를 대형 캔버스에 붙인 먼지 그림(1996) 등의 실험도 거쳤다.

 다시 붓을 잡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형편이 어려워진 가계를 도우려 서울 갈현동 전셋집을 정리하고 경기도 벽제에 정착했다. 직장인 용인대까지 왕복 5시간 출퇴근하며 새벽과 밤에 본 변두리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몸으로 밀고 그려 나가는 ‘회화의 윤리’를 재발견했다. 변두리의 ‘근린 자연’, 출퇴근길에 본 개장수집 개들, 인공 호수에 떠 있는 오리 등 일상의 남루한 풍경을 그렸다.

 이들 대형 풍경화는 얼핏 보면 낭만적·목가적인 듯하나 실제 다가가면 너절한 장면에 불과하다. 흔히 그림이라 하면 대자연의 스펙터클 혹은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극사실주의 회화를 떠올릴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는 불온한 그림들이다.

 “경험한 걸 그리고 싶었다. 캐나다에서 여덟 달 정도 지낸 적이 있었다. 경치가 너무 좋았는데 그림은 한 점도 못 그리고 왔다. 너무 예쁜 풍경인데 내 것 같지 않아서.”

 한국 현대미술에서 이 화가의 소중함은 바로 이 지점이다. “수업하면서 학생들에게 6·25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룬 그림 본 적 있나 물으면 대부분 없다고 한다. 우리 현대 미술은 그런 기반 위에 서 있다.”

 공성훈은 우리 시대의 풍경, 우리 얘기를 그리는 화가다.

 ◆‘2013 올해의 작가’전=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전은 1995년 시작했다. 2011년까지 매년 1∼3명의 작가를 발표했으며, 지난해부터 후보 작가 4명의 사전 전시를 통해 수상자를 가려왔다. 최종 심사위원단은 정형민 관장,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부관장, 이건수 월간미술 편집장, 베른하르트 제렉세 독일 칼스루에 ZKM 미디어 뮤지엄 수석 큐레이터, 푸자 수드 인도 코이(KHOJ) 국제예술가협회 디렉터 등이다. 공씨를 비롯해 신미경·조해준·함양아씨 네 명의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열린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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