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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아난다' … 자기충족적 예언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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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송기홍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는 말이 있다. 기대하는 대로 일이 전개되도록 자신의 행동이나 상호작용을 조절하게 만드는 예측으로, 이를 통해 실제로 미래의 사건이나 결과가 예언에 부합되도록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보스턴의 한 초등학교에서 행해진 실험은 자기충족적 예언의 존재와 효과를 잘 보여준다. 교사가 시험을 앞두고 일부 학생에게 이번 시험에서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귀띔을 해줬다. 임의로 선정해 이런 예측이 맞아떨어질 근거가 별로 없는데도 이들의 대부분은 다른 학생들보다 현저하게 높은 점수 증가를 기록했다. 신념과 기대가 실제로 현실을 바꾼 것이다.

자기충족적 예언이 가장 잘 적용되는 분야가 바로 경제다. 경제현상이란 가계·기업·정부를 비롯한 수많은 행위 주체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모여 하나의 추세로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에서 기업의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소비가 줄면서 각국 정부의 팽창정책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겪고 있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불황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우리 경제에서도 가장 흔하게 접하는 말은 불황과 저성장이다. 많은 사람이 두 가지 용어를 혼동해 쓰고 있지만 불황과 저성장은 그 원인과 해결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황은 경제 순환주기상의 낮은 점을 의미한다. 반면 저성장은 더 구조적인 문제로 인구증가율의 저하,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 소비 유형의 근본적인 변동 등으로 인해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고 지속적으로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1990년 이후 일본이 부동산 거품 붕괴, 주식시장 폭락, 소비 지출 감소 등을 겪으면서 실질 경제성장이 0에 가까운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것이 저성장의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의 직전 분기 대비 분기별 성장률은 2008년 4분기에 -4.6%를 기록한 후 지난 4년간 꾸준히 1% 미만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을 밑돌아 우려를 더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단기적인 불황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저성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2000년대 이후 연 증가율이 0.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30년 이후에는 절대 감소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 가능 인구도 올해를 최고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의 부동산 폭락과 주식시장 붕괴가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시점과 맞물려 있었다는 점은 우리도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국 경제의 상승 국면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소비자의 신념과 기대를 재조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움츠리고 주눅들게 했던 부정적 경기 예측이 아니라 긍정의 자기충족적 예언이 필요하다. 기업은 과감히 기술 혁신과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고, 동남아·중남미·인도 등 고성장 신흥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건전한 소비를 늘려야 하고 부유층·중산층의 소비 지출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거두어야 한다.

 다행히 글로벌 경제지표도 개선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EU) 17개국의 분기별 성장률이 8분기 연속 마이너스에서 탈피해 성장으로 돌아섰고, 미국에서는 소비 심리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중국도 최근 전문 기관마다 0.2%포인트 정도씩 성장률 예측을 상향 조정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올해 목표치인 7.5% 성장 초과 달성에 대해 긍정적인 예상을 내놓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은 3대 경제 블록인 미국·유로존·중국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최근 발표된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에서 각 블록이 모두 경기 확장의 기준인 50을 넘어섰고,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원유·금속·원자재 가격과 전 세계 수출입 물동량과 관련된 해운 운임지수가 5년 만에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가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켤 때다. 지난 불황의 골이 깊었던 만큼 이제 다가오는 경제 상승의 봉우리도 높기를 기대한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높이 경제 성장을 끌고 갈 수 있는지는 우리나라 경제 주체들이 어떤 자기충족적 예언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송기홍 딜로이트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