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무아미타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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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스님들의 국제회의가 10일부터 서울서 열린다. 나라의 개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한국의 가장 두드러진 종교가 기독교인 것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그것만은 아멘이 아니고 인구비례로 따져서 기껏 해서 1할 남짓이다.
한국의 종교로서 제대로 체모를 갖추고, 설등종교에 드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불교.
불교의 세력은 서양중세의 그리스도교의 그것과 맞먹었다. 다만 「가톨릭」적인 국제감은 없었던 것뿐이다.
어쩌면 불교쪽이 「그리스도」교를 앞질러 발달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교는 요즘에와서 토착화라는 것을 떠들기 시작하고있지만 불교는 애당초부터 적어도 한국에서는 철저하게 토착화 했다.
한국에 들어온 불교는 그 기질에 있아서 진실로 가톨릭적이었다. 길에서 스님들이 수도 갈만해도 무속이나 유교와 같은 이질적인 것과도 쉽사리 응합해서 민속과 민중의 생리 속에 깊숙이 파고 들 수 있었다. 대중적이라고 할까.
가령, 우리가 전해 준 것을 받아서 키워 온 일본의 불교하고 비교할 때에도, 우리 것에서는 전혀 배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것은 여유있고 관대하고 대인지풍이 있었다. 그것이 지나쳐서 절간이 유흥지로 변하는 예가 있을 정도고, 그것 때문에 민간의 조롱과 비난을 사는 수가 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비구와 대처가 싸움질을 하고 급기야는 소동까지 벌인 것이 안타까왔지만, 당사자 아닌 일반 민중 속에서는, 세속을 버리고 도를 닦는 수도자로서의 스님에 대한 존경과 기대를 완전히 버린 적은 없었다.
한국의 불교의 대중적인 기질에 비추어서, 이번 서울서 열리게 된 국제회의는 아무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제 서양서는 불교하면 금방 일본을 꼽고, 선이라면 모르고, 일어로 재이라고 고쳐 일러주어야 알아 듣는다. 동양 자처하는 서양인들은 입버릇처럼「사또리」를 들먹인다. 미국까지 건너가서 포교한 한국의 스님도 있지만,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해서 한국의 불교가 널리 사해에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면 좋겠다.
남우아미타불,『아미타불에게 귀의합시다』의 본 뜻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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