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태조의 1등 개국공신 교지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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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 태조가 건국당시 친위군 대장이던 이제에게 1등 개국공신으로서의 벼슬을 내린 교지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이석기씨 집에서 발견됐다.
지난 4일 이곳 이씨 댁 사당 유물을 조사한 주홍섭·신형훈 문화재위원은 이교지가 5백79년 전의 원본이라고 감정하고 『국보급의 귀중한 사료가 되는 고문서』 라고 말했다
이 태조의 개국공신에 관한 옛 문서는 태조6년의 『개국원종공신녹권』(국보69호) 및 『금회연공신녹권』(보물437호)이 있는데 모두문화재로 지정·보호되고있으며 이번 교지는 개국공신을 표창한 최초의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이 태조가 1392년 4월에 등극하자 10월에 내린 이 교지는 기존 공신녹권이 종이임에 비하여, 고운 비단의 두루마리에 묵필로 썼고. 끝에 커다란 옥쇄(9×10㎝)를 찍었다. 비단 폭은 32.4㎝에 길이96㎝.
1㎝나되는 큼직한 글씨 『순충좌명개국신·흥안군천의흥친군위절도사지서연사이제』라 시작한 교지는 배급 겸 등과 혁명에 가담하여 공이 큼을 칭송하고 『3대에 이르도록 벼슬을 내리며, 금대 하나와 단2필, 견7필을 하사한다』 는 내용을 기록했다.
태조의 셋째 따님 경순 공주과 결혼한 이제는 이로써 흥안군에 봉해졌고 뒤에 우군절제사가 됐으나 제1차 왕자의 난에 살해된 건국 초의 주요인물이다.
진 교수는 이 교지가 장지에 배접을 잘못해 말아뒀기 때문에 비단이 많이 상하고 있다고 지적, 시급히 보존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기 전 문화재위원장의 말=연조 오랜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 있는 왕의 표창장이며 임명장이다. 태조의 친필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두루마리에 더 손대지 않도록 하여 특별한 보호조처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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