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미 육군 체질 바꾼 전쟁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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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A&M대 브라이언 맥컬리스터 린 교수는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닌 미군의 전략을 바꿔 놓은 전쟁”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미군을 바꿔 놓은 전쟁이었다.

 미국 텍사스A&M대학 브라이언 맥컬리스터 린(60·역사학) 교수는 9일 “6·25 당시 가장 처절했던 낙동강 전투는 미 육군의 지원병제를 징병제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투가 길어지면서 미군은 병력의 추가 파견이 절실해졌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등에 참가한 예비군 10만 명을 먼저 소집했다. 저항에 부닥쳤다. 젊은이를 내버려두고 하필이면 예비군을 부르냐는 것이었다. 미군은 징병제를 도입했다. 1951년 중반 징집병이 6·25전쟁의 전투를 이어받았다. 50년 8월 초부터 55일간 이어진 낙동강 전투에서 미군은 1200여 명의 전사자를 냈다.

 징집병을 훈련하는 데는 4개월이 걸렸다. 이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열흘 동안 사격술 등 기초훈련을 마친 한국인 4만여 명도 미군으로 편성했다. 카투사(KATUSA)의 탄생이다.

 린 교수는 육군3사관학교와 경북도·영남대가 11일 개최하는 ‘정전 60주년 국제학술세미나’에서 ‘한국전쟁이 미군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기조발표를 한다. 미군이 공개한 문서를 근거로 낙동강 전투와 6·25가 미군의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해 발표하는 것은 처음이다.

 린 교수는 또 “한국전쟁이 미 육군 훈련 과정에 반공 같은 정신교육을 처음 도입한 계기도 됐다”고 주장했다.

 미군과 언론 관계자들은 50년 9월까지 전투에 투입된 미 병사들이 꾀병을 부리고 무기를 버리며 무단이탈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미국이 전쟁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가진 병사들이었다고 린 교수는 말했다. 미군은 한국을 지키는 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임을 강조하고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교육에 새로 포함시켰다. 적응을 못하는 장병은 귀국시켰다.

 그는 “낙동강 전투가 미군 특히 보병의 훈련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전쟁 초기, 미숙한 대응을 떠올리며 행군과 장애물 코스 등 신체 훈련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보병이 근접 공중지원, 대포, 전차 등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반성한 결과였다.

 린 교수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낙동강 전투 현장 등을 답사할 예정이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문화를 많이 접해 첫 방문이지만 낯설지 않다고 했다.

그는 미 육군대학이 교재로 사용 중인 『전쟁의 메아리』 『필리핀 전쟁』 등의 책과 미국 내에서 주목받은 논문 ‘미군의 전쟁관’ 등을 썼다. 요즘은 6·25전쟁 발발부터 베트남전이 시작될 때까지 15년이 갖는 의미를 주제로 책을 쓰고 있다. 자신은 징병 대상이었지만 운 좋은 번호를 뽑아 실제 군 복무를 하지는 않았다고 소개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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