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그레이엄 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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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캐더린· 그레이엄여사(54). 워성턴·포스트지를 비롯해 뉴스위크 등 2개의 신문· 잡지 3개의 텔리비젼 방송국과 2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움직이고 있는 대언론 기업의 총수다.
미국의 석학이며 케네디 대통령의 특별자문을 지낸「아더·슐레이거」교수는 그레이어엄여사는 새로운 타입의 여류신문인이며 아름답고 조용한 여성이라고 감탄하고 「태도가 부자연스럽지 않게 느끼게 하고 해학적인 발언과 자신에 넘치는 판단력을 구사하는 여자』 라고 말한다.
남변 죽자 매스컴 운영 맡아
여사의 뛰어난 영향력은 무엇보다도「워싱턴·포스트」의 독자 중의 한사람인「애그뉴」부통령의 언론규탄이 노린 미상에 바로 여사와 여사의 신문이었다는 것으로 증명된다.
「워싱턴·포스트」를「뉴요크·타임스」와 어깨를 겨루는 미국 유수의 유력지로 발전시킨 공은 순전히 1963년 남편 「필립· 그레이엄」씨의 뒤를 이어 이 매스텀기업을 인수받은 여사의 탁월한 솜씨에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신문은 또 대통령이나 국회양원들만 읽는 게 아니고 캐토의 빈민들과 「버지니아」나 「아일랜드」의 소시민들까지 즐겨 읽는다는데 특징이 있다.
여사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1급 편집자들에게 완전한 자유 재량권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 점이야 말로「워성턴·포스트」의 학사상 가장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지적하면서 한 편집자는 여사의 용기와 지혜를 극구 찬양한 바 있다.
그러나 여사 자신은 『우리 회사가 완전무결할 만큼 전서가 잡힌 조직은 아니라』 고 겸손해 하기도 한다.
「우리회사는 좀 무른데가 있어요. 그건 좋은 점도 되고 결점도 되지요. 누구라도 원하면 나한테 와서 직언도 하고, 의논도 할수 있어요』하고 여사는 경영방침의 일단을 말해준다.
여기서 누구라도는 중의 중요인물은 물론 주필 밴자민·브래들리씨와 회세 주간「필립·개일린」씨를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의「워성턴·포스트」를 이륙한 공로자들이다.
여사는 편집자들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을 주면서도 여성면에 관해서만은 직접 관여한다. 그리고 이 신문의 사교란만은 여사의 손길이 직접 닿는 페이지 로서 워성턴 주재 모든 국내외기자들의 프로필이 되어있다.
워성턴·포스트의 발행인이란 자리말고도 여사는 1969년 한해에 l억7친만달러 (약5백10억원)에 가까운 총수입과 약1천만달러 (약3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던 대기업 왕국 워성턴· 포스트회사의 사장인 동시에 과반수 주주다.
여사의 TV 및 라디오 방송국은「워성턴」·「마이애미」·「잭슨빌」·「신시내티」에 산재해있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워싱턴·포스트」지, 합동 뉴스·서비스사의 주 50%를 소유하고 있는가하면 파리에서 발간되는 「인터내셔녈· 헤럴드· 트리블」지의 일부주와 캐나다에있는 제지 공장을 갖고있다.
10대 여류기업인으로 꼽히기도한 여사는 단순한 사업가만도 아니고 신문 발행인만도 아니다. 여사는 국가적인 「이슈」에 대해서 종종 중요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써 스스로 뉴스·메이커로 등장하기도 한다.
기자출신의 일하는 발행인
4자녀의 어머니이며 두 손자의 할머니인 여사는 1963년에 워싱턴·포스트 회사를 인수했을 당시 이미 워성턴이 사교계와 관변요로에 널리 알려진 인사였다.
잠시 샌프란시스코·뉴저지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 메이어쳐가 워싱턴·포스트를 1백만달러라는 싼값으로 인수한지 6년째 되던 1939년에 그곳으로 전직했다.
1940년 여사의 남면 「필립·그레이엄」씨가 장인으로부터 회사를 인계 받은 후부터 포스트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고 1961년에는「뉴스위크」지를 인수, 그러나 그로부터 2년 후 필립은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와 더불어 여사는 가정주부의 자리로부터 거대한 워싱턴·포스트 사장직으로 옮겨 앉았다.
91년에 뉴스위크지도 인수
존슨 전대통령부인의 공보부장 리즈·카멘터여사는 그레이엄여사를 가리켜 『일하는 발행인』이라고 부르고, 대부분의 신문 발행인들이 그렇지않음을 살짝 덧붙혀 말했다. 그레이엄여사가 밝히는 신문경영의 기본방침은 첫째 철저한 뉴스보도이고, 둘째가 일반대중이 읽을 수 있는 신문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뉴요크·타임스」처럼 높은 수준의 독자를 상대로 신문을 만드는게 아니라 대중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여사는 언젠가 말했다.
일간 50만2천부, 일요만 66만3천부, 뉴스위크 3백만부를 자랑하는 여사의 성공비결은 또한 탁월한 인사정책에 있다는 평이다.【UPI 특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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