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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와 돌고래, 조상은 달라도 특질은 쏙 빼닮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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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편집주간

박쥐와 돌고래는 초음파를 발사하고 그 메아리를 들어서 먹이의 위치와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은 공통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각각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처럼 계통이 다른 동물이 적응의 결과로 비슷한 형태나 기능, 특질을 갖도록 진화한 것을 수렴진화라 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생물학자들이 이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서로 크게 다르고 이것이 만드는 단백질도 엄청나게 다양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박쥐와 돌고래의 초음파 탐지능력에는 동일한 유전적 변이가 많이 작용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양자의 탐지 방식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것은 특히 놀랍다. 예컨대 돌고래는 머리에서 초음파를 생성하지만 박쥐는 사람처럼 성대에서 소리를 낸다.

지난 4일 영국 런던 퀸메리 대학의 연구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해당 연구팀은 이에 앞서 2010년 초음파 탐지를 하는 박쥐와 돌고래가 특정 단백질(프레스틴)을 만드는 유전자에 동일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변이는 청각의 민감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어 청각과 관련된 여타 유전자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견됐다. 이번 연구에선 포유동물 22종을 대상으로 유전자 염기서열 전체를 비교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는 초음파 탐지능력이 있는 박쥐와 없는 박쥐, 병코돌고래, 말, 개, 생쥐, 사람이 포함된다.

연구팀은 모든 박쥐와 병코돌고래, 그리고 5종 이상의 여타 포유동물이 공통으로 지닌 2300여 개의 유전자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 유전자가 다양한 박쥐와 돌고래에서 서로 얼마나 유사한지를 평가했다. 그 결과 200개 유전자에 동일한 방식의 돌연변이가 각기 독자적으로 일어났음이 확인됐다. 이 중 일부는 청각과, 일부는 시각과 관련돼 있었으며 나머지는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었다.

연구팀은 “계통이 완전히 다른 동물의 유전자 염기서열에 거의 동일한 변이가 일어난 장소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 이런 사례가 더욱 많이 발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과는 생물의 가계도, 즉 족보를 만드는 데 골치 아픈 문제를 제기한다. 단백질과 유전자가 서로 비슷한 종은 공통조상에서 최근 갈라졌다고 보는 것이 기본 전제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렴진화에 의해 유전자가 같아진 것일 수 있다. 어떤 가계도도 이런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