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릭스 '입'에 세계가 숨죽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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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이 대규모 병력을 걸프 지역에 집결시킴으로써 대(對)이라크 공격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전세계의 이목이 유엔 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의 한스 블릭스(74)단장의 입에 집중되고 있다.

그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군축 전문가다. 수십년 경력의 노련한 외교관답게 상냥한 매너와 정치적 감각을 지닌 그는 지난해 11월 사찰 개시 이후 미국과 이라크 중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적 발언'을 삼가왔다.

유엔 안보리 결의 1441호는 '이라크가 사찰을 방해할 경우 사찰단장은 안보리에 이라크의 위반사실을 보고하고 무력 행사를 포함한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안보리 2차 보고에서 1차 때와는 달리 이라크가 사찰단의 활동에 상당히 협조하고 있다고 보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독일 등에 힘을 실어줬다.

일설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 2차 보고 직전 블릭스 단장을 만나 정치적 압력을 가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외신들은 이날 그의 보고 내용은 "법률가답게 처신하겠다"는 평소 지론대로 매우 중립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열흘 만에 입을 연 블릭스는 "이라크는 신뢰를 잃었다"며 이번엔 이라크에 불리한 발언을 해 현재 상황으로는 오는 28일로 예정된 안보리 3차 보고 내용을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블릭스 단장은 스웨덴 웁살라 태생으로 스톡홀름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스웨덴 외무장관을 거쳐 1981~97년까지 네차례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연임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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