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의 새로운 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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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 상원 사이밍턴위원회 청문록은 과거 25년간 축적되어 온 한미관계, 특히 한국안보 및 미국의 대한방위공약, 한국군파월, 미군감축, 통한문제 등 중요문제에 관한 생생한 기록일 뿐더러 지난 수년간 미국이 추구해온 대외정책변화의 일환으로 진행되어 온 대한정책변화의 경향과 이를 수행하는 정책 담당자들의 견해를 수록한 중요한 자료로서 우리 앞에 펼쳐졌다.
다시 말해 미국은 무엇이든지 얘기가 통할 수 있는 맹방이라는 한국민의 관념 속에서 서서히 변모·변화하는 국제정세 아래서 자국의 이해를 냉철히 계산한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변화는 대미외교를 담당하고있는 정부당국자들에겐 이미 오래 전에 캐치된 사실이었지만, 국민일반에게 뚜렷이 드러나기로는 처음이다. 사이밍턴 청문회가 이루어진 것은 적게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전쟁확대를 규명하자는데 목적이 있지만 크게는 전후체제를 결산, 그동안 미국의 대외개입을 총 정리하고 새로운 조류에 임하는 대외정책정립을 촉진하는데 있는 것이다.

<우호관계서 이해관계로>
이것은 바로 한미관계의 새로운 전개를 초래하는 것이고 보면 25년 동안 자연 축적된 우호관계에 의존해 온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앞으로의 사태에 대처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새로운 연결에 의한 대미관계의 모색이 절실한 문제로서 클로스업 되었다.
다만 사이밍턴이 청문록이 한미관계의 전부라고는 볼 수 없다.
이 위원회에서 증언한 브라운부차관보, 포터 주한대사, 미켈리스 미8군사령관 등은 이미 다른 위원회에서도 증언한 바 있지만, 예컨대 미의회 내 독수리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하원군사위원회에서의 증언은 그 톤을 매우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따라서 비둘기파의 온상인 사이밍턴 위원회의 분위기 아래서 그들이 증언한 내용은 어느 정도 가감해서 파악해도 좋을 것 같다.
사이밍턴이 청문록은 한국안보에 관한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을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증언은 『지금까지 한국에 준 미국의 모든 공약은 그중 어느 하나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당초에 명시한 미국의 공약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다』는 대목이다. 미국은 53년 상호방위조약이래 숱한 공약을 한국에 주어왔다.
64년 박·러스크, 65년 박·존슨, 65년 험프리 방한 성명, 박·존슨, 68년 최·밴스, 박·존슨, 69년 박·닉슨 공동성명에 이르기까지 정상회담이나 미 정부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관리들에 의해 표명되었다. 그 내용은 『한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격퇴키 위해 즉시 효과적인 원조를 제공할 용의』의 재천명(66년 박·존슨성명)에서 『무력도발에 즉각적으로 결정할 것에 합의했다』(68년 박·존슨)에 이르기까지 점점 강화되었다.

<방위조약에 한미견해차>
이러한 성명들은 대부분 증언에 인용되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상호방위조약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포터 대사는 잘라 말했다. 이것은 한국측 해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국의 외교 업저버 등은 『지금껏 미국의 방위공약은 방위조약을 보강하고 신장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증언은 이제까지 미국이 천명한 공약을 통한 방위의무의 신장을 일시에 응축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와 다른 견해도 있다. 그것은 모든 공약이 방위조약에 규정된 방위의무의 포괄적 내용을 구체적으로 또는 더 강하게 부연한 것으로 보아야한다는 견해다.
특히 미국의 방위공약표명이 한국측의 끊임없는 요구로 재확인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증언은 주목거리다.
포터 대사는 『한국측은 수시로 같은 공약을 되풀이 받을 필요가 있는 모양이어서 결국 미국은 방위조약을 지키겠다는 같은 말을 각 공동성명에서 반복하고 있다』고 했고 브라운 부차관보도 『한국은 때때로 재 보장받길 원했다. 우리들은 몇 차례였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으나 상당히 여러 번 이러한 재 보장을 확인한다는 것을 알렸다』고 증언했다.
풀브라이트 의원은 한국이 재 보장을 요구하고 미국이 똑같은 공약내용을 되풀이 해온 상태를 『비정상적 현상』이라고 말했고 풀 전문위원은 『그렇다면 15년 동안 결코 재고된 일없는 방위조약의 대한공약이 그렇게 강력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브라운은 『공약자체가 조금도 변경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대한 방위공약에 관한 일반의 인식의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접근 어려운 닉슨 행정부>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현상을 되풀이 해온 양국이 69년 박·닉슨 공동성명에서는 그전과 달리 『인간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란 말을 빼고 그저 『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에 대한 무력공격에 대처한다』고만 했고 애그뉴 부통령의 방한 때는 공동성명조차 생략되었다는 사실이다.
포터 대사는 닉슨 행정부가 들어선 후 공동성명의 방위조약내용이 약해진데 대해 한국측의 요청이 어느 정도 강하냐에 따라 성명말투가 조정된다는 견해를 말하고 『내 기억으로는 닉슨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확실히 이런 압력이 덜 들어오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이건 뒤집어 말하면 닉슨 행정부가 한국에는 매우 다루기 힘든 태세로 나온다는 얘기가 되며 『닉슨 행정부에 비해 현 행정부는 훨씬 교섭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과 통하는 것 같다.
주한미군감축문제와 관련, 새롭고 강력한 외교보장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의 현재 입장으로 볼 때 공약천명에 대한 닉슨 행정부의 까다로운 태도는 큰 부담이 될 것 같고 여기서도 종래방식과 다른 새로운 어프로치가 모색돼야 할 것 같다. 사이밍턴 청문회에서는 주한미군 감축에 관해서 명백한 증언이 나오지 않고 있다. 청문회가 지난 2월24일부터 3일간 열린 것으로 보아 감군계획은 3월9일 이후의 어느 때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주도아래 이루어 진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포터 대사는 이 문제에 대해 한국경제발전의 지속과 국군현대화조치가 이루어지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기본적인 공약에 큰 변화가 없다면 다소의 수자적인 조정은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고 감군에 대한 반응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감축의 규모와 국군현대화에 대한 미국의 의도에 대한 분명한 파악이 가능하기까지는 한국민은 불안감을 느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감군문제가 현실화한 후 한국정부가 우려하거나 보장받기를 원하는 문제가 그의 답변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현지대사로서의 포토가 본 관점이 미정부고위층에 의해 감군계획이 확정된 후 양국간의 협의과정에서 충분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은 듯한 저간의 사정은 매우 암시적이다.

<모호한 사전협의조항>
감축문제는 특히 한국군의 월남파병과 상관관계 아래서 다루어진 듯 싶다.
즉 월남파병과 관련하여 한반도에 어떤 종류의 미군병력을 어느 기간 주둔시키겠다는 약속을 한국에 했느냐는 점이 집중적으로 추궁되었다.
포터 대사는 그러한 약속을 한 일이 없다고 답변하고 『주한미군병력은 한국과 사전협의 없이 감축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고 증언했다.
사전협의의 성격에 대한 질문에 포터는 『우방국간의 정상적이고 자연스런 협의과정을 뜻한다』고만 말하고 있는데 이 사전협의가 양국의 동의를 필요로 할 정도로 강한 것이냐는데 대해 미 정부의 태도는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65년 박·존슨간에 사전협의를 합의할 때부터 걸려있던 양국간의 해석차를 다시 한번 들추어낸 것이다.
한국은 사전협의를 비토권을 쓸 정도로 강한 것으로 생각지는 않으나 양측의 양해를 전제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이러한 차이는 곧바로 지금 진행중인 주한미군 감축협의에서 상당한 애로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월남파병과 관련한 브라운각서가 처음으로 공개되고 한국이 월남참전으로 번 돈이 5억4천6백만달러, 주월한국군을 위한 미국의 부담이 9억2천5백만달러라는 자세한 내용도 증언되었다. 브라운각서와 같은 외교 비밀문서가 공개된 것은 어찌되었건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국군 파월에 경제적 해석>
즉 한국이 앞으로 증대할지도 모르는 원조요구에 대해 견제를 하는 일방, 미국내 국민여론에 대비하는 안전판을 주려는 뜻이 아닌가한다.
청문록 발표 후 미국 여러 신문이 『한국이 월남에서 10억달러를 벌어갔다』고 크게 보도한 것은 포터가 한국의 참전동기를 『미국에 부채를 갚는다는 커다란 사명감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은 아랑곳없이 한국의 이미지를 적잖이 손상시켰을 우려가 크다.
꼭 비교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필리핀이 자국에 관한 청문회 기록이 나온 후 마르코스 대통령이 격분, 주월 필리핀군을 철수시킨 사례는 청문회나 기록의 발표가 우방국에 주는 손실을 좀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었다는 견해를 낳고 있다.
통한문제에 대한 포터 대사의 증언은 특히 주목된다. 그는 『얼마전 남북한의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분야를 탐색하는 취지에서 북괴에 눈을 돌리는게 좋으리라는 미국 견해를 한국측과 토의할 수 있는 권한을 국무성에 요청하여 수락 받은 일이 있다.』 『한국이 어떤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고 어떤 조치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며 통일문제에 대한 요지부동의 자세보다는 대화가 더 나은 것으로 믿고있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미국의 견해는 한국 안에 양성되어 온 통일논의와 맥을 같이 한 것 같다.
결국 이러한 논의의 성숙이 지난번 박대통령의 8·15담화에서 밝힌 통일구상에 상당한 뒷받침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다. <윤용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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