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재정적자 위험 수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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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주요 국가들의 재정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경기 침체로 해마다 세수가 크게 주는데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은 "엄청난 재정적자가 일부 국가를 재정파탄으로 몰고갈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각국 정부의 정책 혼란을 불러일으켜 세계 경제 회복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급증하는 각국 재정적자=메릴린치증권은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인 3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의 약 두배로 사상 최대 규모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재정적자가 GDP의 3%를 넘으면 경제에 위험신호가 켜진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재정은 9.11 테러사태 이후 막대한 재정자금을 경기 부양에 쏟아부으면서 급격히 악화됐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근 부시 행정부가 내놓은 6천7백40억달러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중장기적으로 재정수지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함께 세계 3대 경제권을 이루는 일본과 유럽연합(EU)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올해 일본의 재정적자 예상액은 3천억달러로 GDP의 7.5%에 달한다.

EU 회원국 중 독일도 지난해 재정적자가 위험수위를 넘어 3.8%(약 8백억달러)에 달했고, 프랑스는 지난해 2.7%에서 올해 2.9%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역내 경제안정을 위해 재정수지를 적정수준(GDP의 3% 이내)으로 조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럽안정성장협약'에 따라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 대해 재정적자 감축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들 국가는 올해에도 재정적자 비율이 다시 3%를 웃돌게 되면 GDP의 0.5%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선진국들뿐 아니라 개도국들도 재정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홍콩.브라질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GDP의 5%를 넘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 등 동남아 4개국도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의 경기 부양으로 재정수지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국채 발행 봇물=재정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각국은 국채발행 규모를 대폭 늘리고 있다. JP모건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미국 등 주요 22개국의 국채발행 총액은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2조1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별 국채발행 예상치는 미국이 5천8백억달러(전년 대비 50% 증가)로 가장 많고, 일본 8백30억달러(16% 증가), 영국 8백20억달러(60% 증가), 12개 EU 회원국 5천4백70억달러(7% 증가) 등이다.

◇국채 발행의 부작용=국채 발행은 직접적으로 국가의 부채상환 부담을 늘린다.

최근 미 행정부가 국채 발행 한도 증액을 요청하자 민주당 쪽에서는 "다음 세대의 부담을 늘릴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국채 발행의 또 다른 부작용은 금리가 오른다는 것이다. 채권시장에서 신규 물량을 소화시키려면 투자수익률을 높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세계 각국은 금리를 낮춰 소비를 촉진시켜야 할 상황인데 국채 발행을 늘리려면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경제 정책상의 모순에 빠진다.

미국에선 현재 부시 정부가 추진 중인 배당세 폐지가 관철될 경우 주식투자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국채 금리를 앞으로 더욱 올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채권금리가 오르면 주가는 더 떨어질 우려가 크다.

문제는 현재 미국의 경제가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미 금융당국(FRB)은 "2~3분기에도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다시 금리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그만큼 금융시장에 금리인하의 압력이 상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만일 이라크전이 장기화되고 유가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위험이 제기될 경우 금융 당국이 금리를 올려야 하는 부담이 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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