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5)김현숙<초대 여군처장>|여군 2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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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4일은 여군창설 20돌이었다. 한국의「잔다크」들도 이제는 성년기에 접어들었다. 한국동란이 한창이던 지난 50년 조국의 운명이 위태로 왔을 때 침략자로부터 나라면 지키기 위해 나는 여성지도층과 함께 여자들에게도 총을 달라고 감연히 궐기했다. 당시 이승만 박사의 용단으로 여성에게도 부산에서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뎌 오늘날엔 숫적으로나 질적인 면에서 놀랄 만큼 발전했다.
동란 중에는 전-후방 중요 부대에서 행정·속기·통신·경리 사무를 비롯, 육군 병원에서의 정훈업무·대적방송·포로신문 등 전쟁수행에 냇적 공을 세웠다.
이제 바야흐로 본 궤도에 들어선 우리 여군들은 지난해 9월중엔 8명의 고 수병마저 탄생시켰고 월남전선에 파병 할이 만큼 여유를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6·25동란직후 여군 훈련소는 이동·해체 등 많은 수난을 거듭했다.
당시 여군 자체 교육시설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장교후보생들은 광주 보병학교에서, 신병은 제2훈련소동에서 위탁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독립된 여군 훈련소가 마련된 것은 55년 7월10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 등에서였다
여군도 훈련에 있어서는 핵전쟁에 입각한 화생방전교육·방독면착용·개스 제거 훈련·수류탄·태권도 등 남자 못지 않은 교육을 받고 있다.
기상과 취침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규율아래 단체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군이지만 여성이라는 본성만은 저버리거나 잃어서도 안 되는 것. 앞으로 우리 여군도 괴뢰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이와 같은 어머니로서의 수양 교육에도 배전의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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