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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올림픽' 추궁에 … 쩔쩔맨 도쿄 대표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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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다케다 도쿄올림픽 유치위원회 이사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신화=뉴시스]

2020년 여름올림픽을 도쿄에 유치하려는 일본이 유치전 막판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의 오염수 문제로 쩔쩔매고 있다. 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도쿄 유치위원회의 기자회견에서도 곤욕을 치렀다. 회견은 도쿄·마드리드(스페인)·이스탄불(터키) 가운데 개최지가 확정되는 7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앞두고 열렸다. 도쿄유치위 측은 각종 홍보 영상을 틀고, 일본의 기술로 만든 인간형 로봇까지 앞세워 분위기를 잡았다. 하지만 정작 기자들의 관심사는 온통 오염수 문제였다. 다케다 쓰네카즈(竹田恒和) 유치위 이사장에게 던져진 질문 6개 중 4개가 오염수 관련이었다.

 그는 “도쿄는 매우 안전한 도시다. 물과 먹는 것, 공기는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한다고 발표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외신기자가 “그렇다면 도쿄에 있어서 유일한 걱정은 방사능 오염수 누출뿐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다케다 이사장은 “도쿄의 방사선량은 런던이나 뉴욕·파리 등 세계의 대도시와 같은 수준이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기자가 “7일 IOC 위원들도 같은 질문을 할 텐데 어떻게 대처할 거냐”고 추궁했다. 다케다 이사장은 “후쿠시마는 도쿄로부터 250㎞ 떨어져 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만큼 위험하지 않다”고 방어했다. 당초 다케다 이사장은 미리 준비한 영어 원고를 읽은 뒤 답변도 영어로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곤혹스러운 질문이 이어지며 답변을 일본어로 바꿔야 했다.

 상대적 강점인 경제력·자금력을 홍보하기 위해 일본체육협회장인 조 후지오(張富士夫) 도요타 명예회장이 동석했으나 질문이 오염수 문제에만 치우쳐 입을 열 기회가 거의 없었다. 회견에 참석했던 외신기자 대부분은 “일본 측은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하지만 여전히 의문이다. 이번 회견으로 논란이 끝나진 않을 것”이란 반응을 보이며 자리를 떴다. 일본은 도쿄가 마드리드나 이스탄불에 비해 조금 앞서 있다고 내심 판단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대지진을 딛고 일어선 부흥 올림픽’을 부각해 쐐기를 박는다는 작전이었지만, 막판에 오염수 문제가 터지며 계획이 틀어졌다. 특히 BBC를 비롯한 세계 유력 언론들이 이 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는 점이 부담스럽다. 마이니치(<6BCE>日)신문은 “IOC 위원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호텔방 침대에서 TV 리모컨만 누르면 오염수 뉴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7일 열릴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나서 오염수 문제에 대한 이해를 구할 예정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회견에서 “정부가 기술과 지식을 결집시켜 문제를 조기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권당인 자민당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등 일본 국내의 불만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4일 열린 자민당 회의에서 “오염수 문제가 또 터지면 (관할 장관인) 경제산업상이 책임질 것이냐” “오염수는 수십 년을 보관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표출됐다. 또 민영방송인 TV아사히의 뉴스 프로그램에 해설위원으로 출연한 하기타니 준(萩谷順) 호세이(法政)대 교수는 “외국인들의 불안을 불식시키기에 앞서 우리 일본인들의 불안조차 불식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지금까지 ‘어디까지가 위험하고 어디까지는 위험하지 않다’는 설명을 제대로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도쿄전력은 원전 1호기 터빈건물 지하 1층과 4호기 남쪽의 고체 폐기물 처리 건물로 지하수가 흘러 들어오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지하수가 원전 건물로 유입되는 경로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원전 사고 뒤 2년 반 만에 처음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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