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3)양인기<중앙관상대장>대 태풍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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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태풍이라면 으례 일본으로 만 가는 것으로 알고 어쩌다 제주도나 남해안을 스쳐 가는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정도로 서울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1959년에 태풍 사라를 겪은 영남 사람들도 이제는 건망 중에 걸려 설마 또 오랴하고 방심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재는 이렇게 잊을 만 할 때 찾아드는 법이다. 이번 11호 태풍 빌리가 제주도를 스치고도 북상을 거듭 했을 대 새삼스럽게 가슴을 죈 것은 관상대의 직원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천행으로 빌리는 우리 나라 내륙에 큰 타격을 주는 일없이 서해안을 그대로 북상했고 31일 하오 7시쯤 옹진반도로 상륙하면서 온대성 저기압으로 쇠약해져 버렸다. 30일은 일요일이었지만 재해대책본부나 농림부당국은 초비상태세였으며 관상대는 28일부터 초비상 근무를 해왔었다. 제주도에는 막심한 피해를 주었지만, 상륙 시간의 예보는 정확했었고, 목포 앞 바다에 나타나고 나서는 작년 11월에 설치한 관악산의 기상 레이다가 재빨리 태풍의 눈을 포착해서 그 뒤로는 계속 이를 추적해 왔다. 중앙관상대의 레이다·스코프로 태풍의 거동은 일목 요연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의 대 태풍작전은 실로 상쾌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진로 예상에 있어서 30일 밤은 참으로 숨막히는 한때이기도 했다.
어느 때 내륙으로 전향할 것인지 그 가공할 피해를 생각할 때 속단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밤11시 반에야 예보담당관들의 구수 회의로 단이 내려진 것이다. 연일의 피로에 충혈한 그들의 눈에 비로소 안도의 빛이 서린 것이다.
지방측후소에서는 주-야의 구별 없이 30분마다의 관측결과를 타전해왔다. 폭풍우 중에서의 야외 관측인 것이다. 관상대 직원들의 숨은 고생이야 어떻든 간에 정말 이번 일은 천행이었고 온 국민에게 좋은 교훈을 남긴 것으로 안다.
태풍이 2, 3도 전향했거나 50km만 더 동쪽으로 다가왔어도 이렇게는 끝나지 않았을 것을 생각한다면 서울에 경보가 내렸었는데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고 불평할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천재가 잊을 만할 때 찾아든다는 사실을 재인식할 때 우리는 자연 앞에 경건해질 것이며 우리는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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