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와 담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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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제 개학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무료히 한 달을 보내고 나니 무언지 이유 모를 짜증이 나기도 한다. 답답함을 못 견뎌 간단한 차림으로 거리를 나섰다. 무수히 오고가는 사람들의 홍수.
무심히 내 앞에서 걷는 한 젊은 신사의 뒤를 약 2m 간격으로 한동안 걷게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신사차림과는 어울리지 않게 한 두어 모금이나 피웠을까 말까한 듯한 담배를 불이 붙은 채 그냥 길가에 내 던졌다. 나는 그걸 본 순간 요즈음 담배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게 저런 사람을 위해서는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불현듯 얼굴이 화끈해 짐을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까 작년 가을의 일이다. 사회생활 시간이었는데 나는 한 어린이의 어른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할지 몰라 주춤했던 일이 있었다. 불조심이라는 단원을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설명해 준 것이다. 그 설명가운데서 담배를 버릴 때에는 팍 비벼 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그 시간이 끝난 다음 내게로 와서는 하는 말이『선생님 어른들이 더 나빠요』라고 볼멘 소리를 하는 것이다.『그게 무슨 말이지?』하고 나는 놀라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 며칠 전 집 앞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피우던 담배를 우리 집 쓰레기통에 그냥 버리고 가서 제가 비벼 껐어요』하는 것이었다.
이 티없는 아동의 말이 한동안 나 자신을 멍청하게 했다.
그렇다. 아직도 우리주변에서는 너무나 그런 일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어떤 교양 없는 어른의 순간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순진 스런 어린이의 마음을 거스르다니….
나는 그 말을 들은 후 부터는 간혹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실수가 없지나 않았나 하고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진다.
윤정자<교사·인천 부평 동남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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