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와 생활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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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평생가야 생길리 없을 것이며 또 있더라도 유지하자면 어지간히 속이 상하겠다고 느껴지는 자가용 승용차가 이 몇해사이에 부쩍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일요일이라도 되면 가까이는 「스카이 웨이」·북한산성부터 멀리는 청평·온양 등지에 이르기까지 자가용의 행렬이 제법 장관이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뒤로는 이 「하이웨이」를 족제비처럼 누비며 멀리 천리 밖에서 「바캉스」를 즐겨야 제격이 되어 가는 듯하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되었는지 새삼 놀라는 한편 어디서 돈이 나서 저렇게 써 젖히는지 좀 아리송하기도 하다. 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옛날에는 놀이를 간다면 대개는 남자, 특히 가장에 한한 경우가 많았던데 비하여 요새는 아녀자를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가는 것이 상식화되었다는 것이다. 부녀자의 사교나 「레크레에이션」을 악덕시하던 남자 독선의 시대에서 벗어난 오늘의 현상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만일 분에 넘치는 사치나 낭비를 온 가족이 함께 일삼고, 또 깨끗하지 못한 돈을 처자와 함께 쓰는 버릇이 상식화되어간다면 이는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무분별한 처자를 타락시킨다는 것은 가장이 또 하나의 죄를 저지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사실 사회를 구성하는 단위로 볼 때 전근대사회에서는 가족이요, 근대사회에서는 개인인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바이지만 이와 반대로 가족과 함께 즐기느라고 즐겁지도 않은 놀이를 강요당하는 오늘날의 가장의 입장은 퍽 「아이러니컬」하다.
요새 신문이나 잡지에 「바캉스」안내 같은 것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돈 있고 시간이 남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곳을 알려주거나 또는 지상으로 유람하는 눈요기의 효과를 바라고 내는 것뿐이다.
누구나가 무슨 도리로든지 돈을 마련하여 가지고 직장을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족과 함께 「바캉스」를 즐기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철모르는 아녀자들은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남편이나 아버지의 눈치를 보거나 그것으로써 가장의 능력을 재어보려 하니 딱한 노릇이다.
언제부터 여름철의 「바캉스」가 설에 떡국 먹고, 추석에 송편 먹듯이 우리네 생활에 풍습화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넉넉치 못한 돈을 일년 내내 절약 절약하였다가 여름철 수삼일 동안에 모두 중발시켜 버린다는 것이 과연 근대화한 생활이며 지혜로운 살림살이인지 생각하여 볼 문제이다.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바캉스」를 즐기는 것을 시기하고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그들도 그 자체를 무슨 행세나 하듯이 착각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없는 사람이 무리해서 「바캉스」를 즐기는 풍조 또한 백해무익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캉스」란 가도 좋은 것, 안가도 좋은 것, 가게 되면 가는 것, 안가게 되면 안가는 것이다. 이런 평범하고 당연한 생각이 없어져가니 내년 여름에는 『「바캉스」 강조않기 운동』이라도 벌여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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