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현상동결|서독·소 불침조약 가조인의 저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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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럽」의 긴장완화와 안전보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서독·소련 불가침조약에 두 당사국은 드디어 가조인했다. 한마디로 「유럽」의 현상동결로 특징지어지는 이 상호 불가침조약의 타결로 소련은 계속 최대의 위협적 존재가 되고 있는 중공의 도발에 신속히 대답할 수 있는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서독으로서도 「유럽」에서의 정치적 좌표를 비약적으로 확대,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있을 통독을 위한 정지작업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게 됐다.
독소 상호불가침조약이 하나의 건실한 조약으로서 완전한 기능을 발휘하자면 두나라의 정식조인과 두나라 의회의 비준절차가 필요하다.
정식조인은 8월중에 있을 것 같으나 의회의 비준, 특히 서독 연방의회의 경우는 「베를린」 문제와 통독문제에 만족할 만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이를 승인할 수 없다는데서 그 귀추가 주목거리이다.
제2차대전 후 「유럽」의 잔존문제를 정리하는데 큰 구실을 할 상호불가침조약은 크게 보아 ①상호 무력포기 선언 ②두나라간의 국교정상화 강화 ③현재의 영토존중 및 ④상호간의 긴밀한 협조의 4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통독과 「베를린」의 지위보장에 관한 서독의 염원이 비록 부분적이긴 해도 반영되고 있다. 독소협상은 「키징거」 전서독 정권시대에 그 기운이 싹텄으나 68년 8월의 「체코」사태로 중단,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소련이 쾌재를 부른 「브란트」 사민당 정권의 등장으로 급「피치」를 올려 69년 12월8일부터 70년 3월21일까지의 예비회담, 70년 7월27일부터 8월7일까지의 본회담을 거쳐 가조인의 어려운 관문을 뚫은 것이다.
이번 불가침조약을 꿰뚫고 있는 정신은 뭐니뭐니해도 「유럽」의 현상을 묶어두는 것에 있는데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동서 경계선 및 동독과 「폴란드」간의 「오데르-나이세」선의 고정화에 있다.
소련은 독소협상의 성공으로 서독으로 하여금 간접적 형태로나마 동독을 승인케 하여 장기적 안목에서 자기들에게 위협적 존재가 될 통일독일의 기회를 멀리하는데 성공했다. 그뿐인가 소련은 말썽많은 「오데르-나이세」선을 서독이 인정하도록 만듦으로써 「폴란드」의 서부국경을 후고의 염려가 없도록 굳히려던 주장을 관철했다.
동구의 맹주인 소련은 서독과의 화해를 통해 「유럽」에 깔려있는 ??의 신관을 뽑고 서독의 경제력을 도입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서독은 이로써 법률상의 후견국인 2차대전의 연합국 미·영·「프랑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주력을 기르고 「유럽」에서의 발언권을 크게 강화하며 민족적 염원인 통독에의 길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해서 만족한 표정이다.
독일은 1939년 「히틀러」의 「나치스」정권 당시 서진공략의 일부로 소련과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은 바 있으나 1941년의 대소 개전으로 이 조약은 폐기됐었다.
31년 만에 「게르만」 민족과 「슬라브」족이 맺은 불가침조약이 「유럽」 안보에 어떤 방법으로 이바지 할 것인가는 세계의 관심거리이나 동구와 서구는 다같이 이 조약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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