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안강 보릿짚 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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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육칠월 뙤약볕 아래서 김매던 농부들이 잠시 일손을 멈추고 그늘을 찾는다. 벗어든 보릿짚 모자로 바람을 부르며 컬컬한 막걸리라도 들이켜면 여름이 저만큼 물러서 보인다.
갓·망건이 행세하는 시골 노인네의 풍류를 상징한다면 보릿짚 모자는 서민들의 전천후의관. 뙤약볕을 가려주는 「파라솔」로 쓰이다가도 가랑비쯤은 능히 막아주는 삿갓구실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보릿짚 모자가 나온 것은 해방 전부터지만 2, 3년 전부터 값싸고 질긴 「폴리에틸렌」제품의 모자와 재건모자가 유행되자 차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게다가 버드나무나 미루나무 대팻밥으로 만든 「가짜 보릿짚 모자」가 판을 치는 바람에 「진짜」는 여름철 해수욕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보릿짚 모자의 고향은 경북 안강. 대구에서 포항쪽으로 털털거리는 「버스」로 2시간쯤 달리면 널찍한 안강벌에 이른다. 안강읍의 보리경작 면적은 2천여 정보. 무논에도 보리를 뿌려 집집마다 마당에 보릿짚 가리가 쌓였고, 꼬마와 부인네들이 마루에 둘러앉아 잽싸게 손을 놀려 보릿짚을 땋고 있다.
3백여호가 들어앉은 옥산마을은 보릿짚 땋기 모범부락. 겨울철 농한기일수록 일손은 더욱 바쁘다. 이 마을에서만 1년에 약 20만단의 원단이 생산된다. 원단1단의 길이는 보통 13m. 보릿짚 속 대롱 7개를 머리 땋듯 엇바꾸어 가며 엮는 일은 7살 짜리 꼬마도 곧 잘한다.
이 마을 이정순씨 (44)는 국민학교 3학년 짜리 막내딸 박수자양(9)과 둘째딸 소영양(16·안강여중 2년)과 함께 하루에 원단 20단을 엮는다. 요즘 같은 제철이면 1단에 10원, 하루수입 2백원을 올린다. 농가 부업치곤 수월찮은 수입이나 겨울철에는 원단값이 푹 떨어져 하루 1백원 벌이가 벅차다고 한다. 게다가 갖가지 색깔의 값싼 「폴티에틸렌」제품의 모자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예비군 모자가 나오자 경기는 더욱 줄어들었다.
월성군에서는 67년 8월 안강읍 일대에 맥간 부업단지를 만들고 부락마다 총대를 두어 원단 생산을 장려하고 있다. 현재 단지에 들어있는 농가는 3천 2백여호. 지난해에 원단 2백만단을 생산했다. 단지회(회강 이지각·51) 는 제품의 공동판매로 농가수입증대를 꾀하고 있으나 판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보릿짚 모자의 인기가 떨어지자 이해규씨(36·안강리 329)는 원단으로 방석을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지난 7월 28일 방석 1만 6천개 (6천 5백「달러」어치)의 선적을 끝낸 이씨는 『처녀수출이라 큰 이익은 없지만 판로가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서독으로부터도 8천개를 주문받았다』면서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아쉬워했다. 보릿짚 방석은 경기장의 1회용 방석이나 「레스트랑」에서 그릇 받침으로 쓰인다고 한다.
안강시장에서 3년째 모자가게를 열고있는 최상태씨는 불경기로 울상이다. 동생 상화군 (21)과 함께 자봉틀 2대를 차려 놓은 최씨는 여름한철을 벌어서 산다.
2, 3년 전만 해도 부산·대천 등 큰 해수욕장과 전국의 강태공들이 한철에 5만개를 소비했는데 올해에는 아직 1만개도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년까지 시장 안에 모자 만드는 집이 5개소가 있었으나 차례로 문을 닫고 두 집밖에 남지 않았다.
모처럼 빛을 보았던 농가부업이 유행의 흐름에 따라 빛을 잃어가자 또 하나의 명물의 고향은 더욱 후텁지근해보이기만 하다.
글·김재혁 기자
사진·김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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