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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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동경의 시민들은 지난 2일 축제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도심의 번화가에서 모든 자동차가 추방되었다. 대로는 마치 맹수를 몰아낸 듯이 삽시간에 평화를 누렸다.
대로상에서 유모차를 밀고 가는 어머니,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 신문들은 이 날을 「보행자 천국의 날」이라고 명명했다.
금년 봄 4월 22일, 미국의 젊은이들에 의해 선언되었던 「지구의 날」에도 「뉴요크」시에서는 자동차들이 쫓겨났었다. 지난달 11일엔 「린지」시장이 공식적으로 자동차 추방을 「실험」했다. 상오 10시부터 하오 5시까지 5번가를 보행자만을 위한 길로 개방한 것이다. 남·북 약 1.2km, 폭 5차선의 대로이다.
「5번가」라면 세계적으로 이름난 보석상 「티파니」등 관광객들의 「쇼핑」산책가이다. 「린지」시장의 「실험」에 상인들은 좋아할 리 없다.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보행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가두 조사에서 75%의 시민이 여기에 찬성-.
「실험」의 결과는 「낙원」으로 나타났다. 번화가의 공기 중 일산화탄소는 5분의 1로 줄어들었다. 상오 10시의 5PPM이 하오 1시엔 1PPM. 이산화질소는 11시 이후 「제로」PPM의 반응을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배기「개스」가 자동차와 함께 쫓겨난 때문이다. 「악마의 길」은 잠시나마 「인간의 길」로 회복된 셈이다. 실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1885년은 자동차사상 가장 중요한 해로 기억된다. 독일인 「다이믈러」 (Gottlieb Daimler·1834∼1900)가 「개설린·엔진」을 완성. 4륜의 「개스」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칼·벤츠」(1844∼1929)가 역시 3륜의 「개설린」 자동차를 완성한 것도 이 해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때부터 충격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오늘날엔 이 지상에서 매년 2천 3백만대의 자동차가 생산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보유 수는 무려 1억 대를 헤아린다.
그러나 오늘, 불과 85년만에 인류는 자동차의 공기에 신음하며 그 추방에 박수를 치고있다. 미국 「뉴요크」주지사 민주당 후보로 나선 「골드버그」는 바로 선거 「이슈」로 자동차의 추방을 주장하고있는 형편이다.
현대문명의 자동차 추방운동은 맹목성에 찬물을 끼얹는 하나의 본보기이다. 인간이 가장 현명한 발명품으로 경탄해 마지않았던 그 자동차를 지금은 스스로 밀어내야 하는 「패러독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명의 이상은 문명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 존중에 있다는 하나의 웅변이다. 「런던」 시민들은 오늘 호화판의 「롤즈·로이즈」보다는 맑은 공기 속을 나는 한 마리 새(조)에 감탄하고 있다. 이 얼마나 익살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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