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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군부, 이집트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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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2011년 아랍의 봄. 시민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정권을 출범시킨 아랍의 맹주 이집트가 다시 군사독재로 회귀하고 있다. 7월 3일 압둘 파타 알시시 국방장관이 이끄는 군부는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새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전국에 비상경계령을 선포했고, 이내 철권통치가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군·경찰·보안군의 발포로 발생한 희생자만 1000명을 넘어섰다. 참으로 비극적인 반전이다.

 민주적 보통선거로 선출된 무르시 정권은 왜 1년3일 만에 무너져야 했나. 군부는 민주화 이행 이후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악화됐다는 점을 개입의 이유로 내세웠다. 바닥난 외환보유액과 급격한 파운드화 평가절하, 주식시장 불안, 치솟는 인플레이션, 특히 식량과 연료 가격의 급상승이 중산층과 서민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이는 광범한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무르시 정권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목소리는 군부 개입의 가장 큰 명분으로 작용했다.

 무르시 정권의 정치적 미숙도 한몫을 차지했다. 2012년 6월 16, 17일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무르시는 51.7%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군부 출신으로 무바라크 시대의 기득권층과 세속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아흐마드 샤피크는 48.3%를 얻었다. 지난해 12월 한국 대선을 연상케 하는 아주 근소한 차이의 승리였다. 그러나 무르시는 이러한 현실을 간과한 채 헌법 개정을 포함한 이슬람식 개혁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타협과 포섭의 정치가 아니라 원칙과 배타주의 정치로 반대세력의 외연을 넓히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군부 기득권 세력의 여전한 위세다. 1952년 나세르의 군사혁명 이후 군부는 이집트 정치의 근간을 이뤄 왔다. 그의 뒤를 이은 사다트, 또 그 뒤를 이은 무바라크 모두 군 장성 출신으로, 이들 군부 세력은 근 60년 동안 이집트를 지배했다. 2011년 민주혁명 이후에도 최고군사위원회가 사실상 이집트 정치와 정보, 보안기능을 좌우해 왔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군부의 경제적 장악력 또한 상당하다. 이집트 군부는 군산복합체, 건설회사, 홍해 휴양지, 부동산 등을 보유·운영하면서 이집트 국민총생산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또한 관료층이나 기득권 세력과도 촘촘한 연계망을 구축해 왔던 것이다. 신생 무르시 정부가 이렇듯 막강한 군부를 상대로 개혁을 감행하기에는 사뭇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대외관계라는 변수도 빼놓을 수 없다. 무르시는 취임 이후 이스라엘에 저가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던 정책을 중단하고 이란을 방문하는가 하면, 중동 전역에 이슬람 원리주의가 확산되는 현상을 옹호하고 나섰다. 오바마 행정부가 무르시 정권을 포섭하려 애썼지만 이들의 강력한 반이스라엘 정서는 악재로 작용했다. 원리주의의 화신으로 떠오른 무르시 정부를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같은 보수 왕정국가들이 달갑게 볼 리도 만무했다. 결국 이 섣부른 외교행보 역시 이집트 군부의 정치개입을 촉발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

 무르시의 주요 지지기반이었던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군부가 펼치고 있는 공세의 수위는 가공스러울 정도다. 이들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해 보안군의 발포를 합법화하는가 하면, 군과 경찰 일부가 이에 반발하자 친정부 성향 이슬람 성직자들의 파트와(fatwa, 법적 견해)까지 동원해 시위자들에 대한 강제진압을 정당화하고 나섰다. 언론매체를 동원해 무르시 세력을 미국과 결탁한 악마로 낙인찍는 대민 심리전도 효과를 거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주민들의 증오가 고조되고, 그 조직과 지휘체계는 속속 와해되고 있다. 이제 “무슬림 형제단의 정치생명은 끝났다”는 예측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으로 끝일까. 이들은 잠시 잠적할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1928년 핫산 알반나가 창건한 이래 무슬림 형제단은 90여 년 세월 동안 숱한 역경을 겪었다. 54년 나세르 암살미수 사건으로 와해 위기를 겪었고, 81년 사다트 암살 직후나 무바라크의 압정 기간에도 큰 고초를 겪었지만 이들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그 세력을 점차 키워 왔다. 이집트 주민들의 생활이 피폐해지고 독재와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무슬림 형제단 세력은 언제든 더 큰 도전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무르시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하고 무고한 민중을 살육한 군부에 대한 기억도 이들의 부활을 돕게 될 것이다. 비문을 쓰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집트의 비극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