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아프다고 구부리다보면 영원히 '꼬부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김모(75·서울 서초동) 할머니가 이웃에 사는 친구와 병원을 찾았다. 허리가 굽어 걸음걸이가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동행한 할머니도 허리가 굽은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친구는 통증이 있어 걷다 쉬기를 반복했다. 김 할머니는 친구보다 치료가 훨씬 간단할 것으로 생각했다. 허리가 굽은 것 외엔 통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판이했다. 친구 할머니는 간단한 시술로 허리 통증도 잡고, 허리도 펴졌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특별한 치료가 없으니 허리 근육 운동만 열심히 하라는 처방만 받았다.

나이가 들어 허리를 굽게 만드는 질환은 다양하다. 이를 노인성 척추후만증이라고 하는데 예전엔 나이가 들면 당연히 허리가 굽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수명이 늘고, 치료술이 발달하면서 허리 굽는 병은 치료가 가능한 병으로 바뀌었다.

가장 흔한 병은 골다공증으로 인한 척추후만증이다. 뼈가 약해지면서 척추뼈가 점점 주저앉는다. 이들 환자는 초기에 심한 통증을 수반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뼈가 완전히 주저앉고 아물면서 통증이 사라진다. 문제는 이때부터 주저앉은 뼈 주위로 허리가 굽는다. 초기에는 X선 촬영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근육통이라는 진단만 받고 물리치료만 하는 경우가 많다. 통증이 계속 되면 1주일 후 추시 X선 촬영을 해서 확인을 한다. 이때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주 정도 지나도 통증이 지속되면 척추골 성형술이라는 간단한 주사 치료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척추뼈가 더 이상 주저앉기 전에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척추관협착증도 허리를 굽게 한다. 신경이 지나는 통로가 막혀 척추신경으로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질환이다. 일어나 걷기 시작하면 엉덩이나 골반부위가 무거워지면서 허리가 굽는다. 척추관협착증이 심해지면 다리·허벅지까지 증상이 온다. 종아리가 운동 후 알 배긴 것처럼 늘 뻐근하고 터질 것 같은 증상도 동반된다.

허리를 구부리면 허리 구조상 신경통로가 넓혀지므로 본인이 의식하지 않고도 허리가 점점 굽는다. 이렇게 허리가 굽으면 허리를 세워주는 허리 근육이 같이 늘어난다. 시간이 지나면 근육의 탄성이 없어져 허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약해진다. 마치 늘어난 용수철이 다시 제 위치로 돌아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단계까지 오면 척추관협착증은 치료해도 허리를 펴고 걷기가 어렵다. 척추 퇴행이 오면 척추 연골이 닳아 버리면서 통증이 발생한다. 허리를 구부리면 척추관절 통증이 완화돼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구부린다. 이렇게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면 허리 근육이 늘어나 결국 허리를 펴지 못한다.

초기에 허리가 구부러지면 허리 통증이 동반되지만 만성적으로 근육이 늘어나면 통증이 없다. 이 경우에는 근육 문제로 골반이 굽어 있다. 이런 환자는 허리를 펴는 수술을 해도 골반이 변형돼 효과가 없다.

아픈 것을 참고 살다가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으므로 척추·관절질환은 조기 진단·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김재훈원장 정형외과전문의·제일정형외과병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