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낮추면 일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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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대학문을 나온 지 2년이 넘은 이수진(25.여)씨는 아직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토익 성적이 9백점을 넘고 학점도 높은 편이지만 좀처럼 취업 열쇠를 쥐지 못하고 있다. 30군데 이상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면접까지 올라 간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는 "대기업에 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외국계 기업은 이력서가 쌓여 있다며 눈길 한번 제대로 안준다"며 "이젠 눈높이를 낮춰 견실한 중소기업 문을 두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씨처럼 대졸 취업 재수생들이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둥지를 트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기업 취업문이 현실적으로 비좁기 때문이다.

◇왜 중소기업인가=중소 업체지만 기술력이 좋은 기업에 들어간 이지용(25)씨. 그는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을 찾아 다니는 동기들과 달리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취업 사이트를 이용해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중소기업 지원 기관인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유망 중소기업 리스트를 손에 넣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전공(제어계측)을 살릴수 있는 기업을 골라 어렵지 않게 입사했다. 그는 "커가는 회사여서 배울 게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대기업만 고집하지 않으면 취업 기회는 알려진 것보다 넓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올 경기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선뜻 채용규모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기술인력 등이 모자라 안달이다.

온라인 채용정보 업체인 잡링크(www.joblink.co.kr)가 유망 중소기업 1백75개사를 골라 올해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71%가 '사람이 모자라 인력을 더 뽑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전자부품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골든콘넥터 윤여순 사장은 "쓸만한 개발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일이 덜 나눠져 있어 회사 업무 전반을 파악하기 쉽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다고 취업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창업을 염두에 둔 사람이라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잡링크의 김현희 실장은 "전공을 바로 실전에 활용하려면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지름길"이라며 "중소기업에 지원할 때는 자격증이나 전문지식 습득 정도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경력 쌓으면 대기업 문도 열린다=최근 대기업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경력직 채용 비중을 늘리면서 일정한 경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에서 3년간 근무했던 최용훈(33)씨는 최근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는 사내외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기획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소문이 나면서 헤드헌터로부터 스카우트 중계 제의를 받았다. 그는 "중소기업에선 자신의 능력을 보다 쉽게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중소기업 고르나=중소기업을 선택할 때는 해당 기업이 갖고 있는 성장 잠재력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회사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능한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회사의 경영 상태를 파악하면 판단에 도움이 된다.

중소기업청 등 정부기관이 선정하는 우수 중소기업은 검증받은 기업으로 보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기업 가운데서도 재무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도산하는 경우가 있으니 되도록 15년이상 사업을 한 기업을 고르는 것이 안전하다. 상장업체의 경우는 증권사에 가면 최근 5년 동안의 기업 실적을 알아 볼 수있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 유망 기업을 추천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직접 회사를 방문해 분위기를 파악하는 적극적 자세도 요구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대기업만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정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직종을 선택해 체계적으로 경력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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