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화성의 이과, 금성의 문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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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규연
논설위원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별에서 산다-. 남녀 탐구생활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현대 고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던진 도발적인 명제다. 여자와 가까운 단어는 사랑·친밀·대화, 남자와 가까운 단어는 능률·효율·업적이라고 책은 밝힌다. 남자는 목적을 이룰 때, 여자는 느낌을 나눌 때 각각 만족한다고도 주장한다. 책은 또 지구에서 만난 남녀가 서로를 탐구하지 않으면 증오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사회에서 남녀만큼이나 딴 별에 사는 두 족속이 있다. 바로 문과와 이과 출신이다.

 서울 강남의 적성 상담현장에 간 적이 있다. 상담사는 학생들에게 적성 판별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갑자기 함박눈이 내린다고 하자. 문과 적성은 그 눈에 취해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과 적성은 눈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결정구조를 들여다본다. 이과는 논리적이고 문과는 감성적이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현장의 학부모·학생은 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는 듯했다.

 알다시피 성별은 성염색체에 따라 정해진다. XX와 XY의 선택이다. 가끔 XXY, XYY 등도 나오지만 수천 명 중 한두 명꼴에 불과하다. 적성은 성별처럼 둘로 나눌 수 없다. 둘 사이에 다양한 적성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제도는 어린 학생들을 이과형·문과형으로 칼같이 쪼개낸다. 고1 때의 선택은 진학·취업은 물론 인생 전체에 큰 영향을 준다. 한번 배치되면 그 행성에서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렵다.

 문·이과 구분의 실익을 깡그리 뭉갤 수는 없다. 고교·대학은 손쉽게 입시·교육을 관리한다. 회사 역시 사무·생산직으로 나눠 배치하기 편하다. 일찌감치 전공을 정해주니 업무숙련도도 높아질 수 있다. 한 우물을 파먹고 살던 성장·개발 시대에는 분명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와 산업이 변했다. 시대는 창의와 혁신을 요구한다. 예술과 기술, 인문과 기술이 합쳐져야 힘을 내는 세상이 됐다. 인지과학·로봇·인공지능·빅데이터·뇌과학·문화기술 등은 화성의 이과, 금성의 문과로는 감당 못하는 산업이자 학문이다.

 문·이과 폐지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2002년 새 교육과정이 시작될 때 문·이과 명칭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학은 인문·자연계로 나눠 학생을 뽑고 고교도 이에 맞춰 엄격히 나눠 가르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논의는 계속돼 왔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동영·권영길·문국현 후보 진영은 폐지에 적극 찬성한다는 의견을, 이명박 후보 측은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각각 냈다. 정치 리더 중 어느 누구도 그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해 11월, 서울대 미래교육기획위원회는 신입생을 뽑을 때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방안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여러 지식인그룹과 언론이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몇 달이 흐른 뒤 위원회는 대학본부에 최종보고서를 올렸다. 정작 본부는 추진과제로 채택하지 않았다. 서울대 관계자는 “이사회에 안건이 올라갔지만 교육현장의 혼란 등을 고려해 당장 추진하기는 힘든 과제로 분류됐다”고 했다.

 문·이과 폐지의 당위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항상 문제는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느냐였다. 교육당국과 대학, 정치권이 이날 저날 결단을 미루다 지금까지 온 것이다. 최근 문·이과 폐지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교육부가 2017학년도 수능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문·이과 칸막이를 실질적으로 허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미래의 물결을 제대로 품기 위해 이번만은 이분법의 사다리를 허물어야 한다. 초네트워크 사회에서 어린 학생에게 금성과 화성 중 하나를 택하라고 요구하는 광경을 보라. 이상하고 오래 묵은 모습 아닌가. 화성의 이과, 금성의 문과는 시대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