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장동팔경'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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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정선의 ‘장동팔경’ 일부. 왼쪽부터 청풍계·수성동·인왕산·세심대로 크기는 각 58×37㎝다. 덕성여대 박은순 교수는 “둔탁한 필치로 보아 장동팔경 중 가장 늦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진 공아트스페이스]

옛 한양의 장동(壯洞)은 인왕산 남쪽 기슭에서 백악산 계곡에 이르는 지역이다. 현재의 서울 효자동·청운동 일대다. 한양 최고의 거주지로 꼽히며 권문세가들이 많이 살았다.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1676~ 1759)은 지금의 경복고 인근 청운동서 나고 자랐다. 그가 이 일대를 즐겨 그린 이유다.

 겸재의 ‘장동팔경(壯洞八景)’이 있다. 백악산·인왕산과 두 산의 명소 각 세 곳씩을 그린 작품이다. 청송당(聽松堂)·취미대(翠微臺)·백악산(白岳山)·청하동(靑霞洞·자하동)·청풍계(淸風溪)·수성동(水聲洞)·인왕산(仁王山)·세심대(洗心臺) 등 8점이 서울 인사동길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처음 공개됐다. 다음달 15일까지 전시된다.

 ‘장동팔경’은 서울 간송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도 각각 소장돼 있다. 이번에 나온 것은 개인 소장품으로 다른 첩에는 없는 ‘세심대’가 실려 있다. 묵찰법(墨擦法)으로 속도감 있게 쓸어 내린 화강암벽 등 겸재가 기량을 한껏 발휘한 그림이다.

 이 일대는 도시개발과 함께 변화를 겪었는데 대표적인 곳이 수성동이다. 1971년 옥인동 시범아파트 건설로 계곡 암반이 콘크리트로 덮였다가 2008년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복원, 지난해 7월 시민에게 개방됐다. 복원 사업의 근거가 된 것이 겸재의 그림 ‘수성동’이었다. 진경산수화의 힘이다.

 공아트스페이스는 개관 3주년을 맞아 고려대박물관과 함께 ‘한양유흔(漢陽留痕)-한양이 남긴 흔적’전을 열고 있다.

‘장동팔경’ 외에 겸재의 또 다른 대작 ‘백납병풍(百納屛風)’도 출품됐다. 23점의 그림과 표암(豹菴) 강세황(1713~91)의 발문을 한데 모은 8폭 병풍이다. 이 가운데 ‘경복궁도’는 노년기 겸재의 그림으로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조선 정궁(正宮) 경복궁터의 쓸쓸한 정취를 묘사했다.

 이밖에 단원(檀園) 김홍도, 호생관(毫生館) 최북, 현재(玄齋) 심사정 등 조선시대 내로라할 화가들의 한양 그림, 왕비들의 인장, 의례도 등 100여 점이 전시된다.

 이원복 경기도박물관장은 “왕조가 한창 융성했을 시기 한양의 이모저모를 그 어떤 기록보다도 생생히 알려주며 18세기 조선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02-730-1144.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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