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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청춘에게 절망 안긴 대구과학관 채용 비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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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초봉 4000만원 이상, 정년 61세 보장이라는 신의 직장은 공무원 같은 힘깨나 있는 사람들의 전리품이었다. 국립 대구과학관이 공개 채용한 신입 직원 24명 중 20명이 부정합격자였으며, 이들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대구시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이 연줄을 동원해 채용을 청탁한 자녀, 친구, 부인으로 드러났다. 대구 달성경찰서가 어제 발표한 채용 비리 전모다. 대구과학관은 청소년들에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미래부와 대구시가 국민 세금 1100여억원을 출연해 만든 교육 및 전시 시설이다. 지난 6월부터 이곳에서 벌어진 직원 채용 비리는 국민의 공복이라는 공무원이 도대체 누굴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되묻게 한다.

 직원 채용은 서류 전형과 면접만으로 이뤄졌다. 특히 면접 과정을 자세히 보면 관련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이 자기 자녀에게 신의 직장을 대물림하기 편하도록 돼 있었다. 과학관장과 인사담당자가 면접 심사 과정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면접 심사위원들에게 백지 평가표를 내도록 했다. 미리 점찍어 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응시생 인적사항 요약본’을 만들어 심사하는 데 활용했다가 나중에 파기했다. 형식만 공채일 뿐 관리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아도 관리가 되던 과거 음서(蔭敍)제와 다를 바 없었다.

 미래부는 문제가 된 20명을 다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10대 1이 넘는 공채 경쟁률 속에서 공무원 자녀 등에게 밀려 철저히 들러리 신세를 선 일반 지원자들의 분노를 생각한다면 채용을 다시 하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공채라는 이름에 걸맞게 채용 선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면접 점수로만 뽑는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대구과학관 채용 비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은 지금 허탈감에 빠져 있다. 어느 누가 이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게 될 검찰은 채용 과정에 또 다른 힘 있는 사람들이 개입돼 있지 않은지 철저히 수사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