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자금의 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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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자도입업체가 차관으로 들여온 외자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당초 인가조건과는 달리 처분한 경우가 지난 5월 말 현재 15건, 3천 3백 91만 「달러」에 이르고 있어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차관자금의 전용이 빈번한 이유는 ⓛ사업계획을 변경했거나 차질이 생겼고 ②사업부진으로 원리금 상환에 사용했거나 대불정리 또는 운전자금으로 썼으며 ③과다도입에 따른 잉여자재의 발생 등으로 분석되고 있는 것 같다.
외자도입 실적이 25억 「달러」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차관사업에 부분적인 차질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근자의 차관기업 동향이나 외환 수급 정세로 볼 때 우리는 종래와 같이 안이한 태도로 외자문제를 다룰 수는 없게 되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계속 발생하고 있는 부실기업, 차관 원리금의 상환대불 등에 이어서 차관자금 자체가 당초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는 상황이 빈발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나 염려스러운 움직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 차관 도입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행정적인 절차가 유례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부실기업이 발생하고, 원리금 상환을 위한 대불이 누증하는 것이며, 심지어 자금용도 변경까지도 빈발하게 되는지 우리로서는 이해키 곤란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외자도입심의위, 그리고 금융기관의 심사와 분석을 거쳐 이루어지는 차관사업이 어떤 경우에는 완공도 되기 전부터 문제를 일으킨다면 결국 당국의 심사과정이 경제적 척도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엉뚱한 척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형식적이고도 복잡한 과정은 오히려 거추장스런 갖가지 부대비용만 증가시킬 뿐, 차관 허용여부와는 관계없게 되고 그 때문에 중간심의자체가 무책임하게 이루어진 결과가 아닌지 당국은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 한 예로서 상공회의소가 지적하고 있듯이 국제단위를 고려하지 않고서 중소단위로 차관을 분해시켜 여러 사람이 같은 공장을 짓게 하여 오늘날 비능률적인 기업이 속출하고 부실화하는 과정을 일으킨 점을 당국은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그러한 과오가 혹시 사적동기의 개재 때문에 저질러진 것 인지의 여부도 차제에 철저히 가려내야 할 줄로 안다.
솔직히 말하여 오늘날처럼 발달한 경제계획기술을 가지고서, 그처럼 터무니없는 차관허가가 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에게는 불쾌한 일이라 할 것이다.
또 차관자금이 당초 목적 외로 전용되었다는 것은 결국 차관이 계획을 이탈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국가 목적의 이탈을 야기케 한 기업에는 그에 상응하는 제재조치를 가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도, 매년 연간 6억∼7억「달러」의 신규차관을 도입해야 할 입장에 있는 이상, 차관 풍토를 개선한다는 뜻에서도 부실 차관을 한 기업체에 대한 엄격한 제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타성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적당히 간판만 가지고 차관을 들여와서, 은행융자로 움직이다가, 적당히 실속을 차리고는 빈 껍질만 남은 기업체를 은행에 다시 떠맡기는 등 악순환을 막을 길이 없겠기 때문이다.
책임있는 외자도입정책의 확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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