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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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4월24일은 나의 결혼 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향이 아빠는 몇칠 전 벽에 걸린 캘린더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내 이번 우리 결혼 2주년 기념일엔 당신에게 좋은 선물을 하나 할 테니 기대하구려』라고. 기쁜 마음과 좋은 선물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 속에 며칠을 보내고 바로 그이가 약속한 날이 왔다.
그날 아침 나는 출근하는 그이에게 가방을 내어주며 『여보, 오늘이 바로 당신이 저에게 약속한 날이예요』하고 살며시 웃었더니 그이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문을 나선다.
그이의 퇴근 시간이 그렇게 긴지 알 수가 없었다.
시계가 이윽고 하오 다섯 시를 가리키고, 곧 그이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는게 아닌가. 난 좋은 선물을 기억하면서 대문을 열었다.
그이 손엔 한 권의 책과 종이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이는 비식이 웃으며 책을 내 손에 들려주는 『이것은 당신 결혼 선물이고, 이 봉지에 든 것은 향이 선물이야』한다.
나는 얼른 책을 펼쳐보았다. 다음 아닌 매달 월급날이면 그이가 내게 사다 주는 월간 잡지였다.
또 좋이 봉지를 뜯어보았다. 거기엔 우리 향이가 매일 먹고 있는 우유 깡통이 들어 있지 않은가.
그이는 저녁 상머리에서 나에게 포도주 한잔을 따라주며 『여보, 물론 당신이 오늘 내게 실망을 했겠지만, 오늘을 잊지 않았다는 것과 당신과 내가 한자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더 큰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소. 영국의 고 처칠 경은 결혼 후 부인과 같이 있던 기간은 통틀어 3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책에서 본 기억이 나오』하며 껄껄 웃는다.
그렇다. 그이는 결혼 때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휴가를 마치고 귀대했고 또 작년 우리의 결혼 1주년은 그이가 멀리 떨어져 근무했기 때문에 자리도 같이 하질 못했는데…. 그래도 올 2주년은 그이와 함께 이야기라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하며 행복한 일인가.
정영옥 (서울 성동구 천호동 423의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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