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에 막힌 세금낭비 감시 결산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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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을 잘해야 예산을 잘 짤 수 있다. 국회의 결산 심사는 정부가 국민 세금을 제대로 썼는지 따지는 절차로 국회의 가장 중요한 의무 중 하나다. 국회도 예산과 결산을 동급으로 보고 ‘예산결산 특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결산 심사를 위해 27일 소집된 국회 상임위원회는 줄줄이 파행됐다. 이날로 27일째인 야당의 장외투쟁 때문이다.

 원내외 병행투쟁을 선언했지만 오전 10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은 위원장인 신학용 의원과 간사인 유기홍 의원뿐이었다. 신 위원장은 “정상적인 회의진행이 어렵다”며 10분 만에 산회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전날 법제사법위원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농림수산식품해양위원회·여성가족위원회의 결산 심사도 같은 이유로 모두 시작 5~10분 만에 끝났다. 예결위원인 새누리당 김광림 의원은 “지금 뭘 할 수 있겠느냐”며 “하늘만 쳐다볼 수도 없고 의원들끼리 사전에 예산 공부라도 해 두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로써 2012년도 결산안 심사는 사실상 법정기한을 넘기게 됐다. 국회는 2003년 국회법을 개정해 ‘조기결산심사제도’를 도입했다. 국회법 128조2는 “9월 정기국회가 열리기 전까지 전년도 결산안을 심의·의결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기국회 개회일은 9월 2일. 결산 과정은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OOOO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대해 ‘각 상임위 예비심사 → 예산결산특 위 종합심사 → 본회의 심의·의결 → 정부 이송’의 순서로 진행된다. 첫 단계인 상임위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9월 2일까지 결산 과정을 마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모두 29~30일 의원 워크숍을 마련해 놓아 국회를 비우게 된 상태다.

 결국 지난해 정부가 쓴 325조4000억원은 입법부의 심사 없이 무사 통과하게 됐다. 무엇보다 국회는 또 한 번 스스로 만든 법률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그동안 9월 정기국회에서 결산심사를 할 때는 국정감사와 예산안심사 등에 우선순위가 밀려 부실·졸속으로 끝나곤 했다. 그래서 정기국회 전에 결산심사를 완료하겠다며 조기결산심사제도를 만들어 놨으나 제도가 시행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2011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8년간 법률을 지키지 않았다. 이제 또 한 번 법률을 어기게 된 것이다.

 국회 예결위 김춘순 수석전문위원은 통화에서 “결산안은 예산안과는 달리 국회에서 처리를 못해도 그냥 넘어가면 끝”이라며 “주인(국민)이 대표(국회의원)를 뽑아서 관리인(정부)이 돈을 잘 썼는지 감시하라고 했는데 그 임무를 방기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산심사가 뒤로 밀린 건 늘 정치공방 때문이었다. 지난해엔 민주당 박지원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방탄국회’ 논란으로 국회가 파행을 겪는 바람에 법정시한을 넘겼다. 결산 국회가 파국을 맞을 때마다 정치권 안팎에선 “정부 좋은 일만 시켰다”는 말이 나왔다. 한경대 이원희(행정학) 교수는 “결산 심사 부실은 예산안 심사 부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결산안 심사가 물 건너간 날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청와대에 ‘선(先) 양자회담, 후(後) 여야 다자회담’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먼저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의 ‘양자회담’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결론을 내고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다자회담’에서 민생을 의논하자”고 했다. 제안과 동시에 김 대표는 천막당사에서 밤을 보내는 ‘노숙 농성’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여야의 충분한 사전 토의와 협상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통령과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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