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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을 국회 증언대에 세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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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정부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헌법기관은 사실상 감사원이 유일하다. 국회도 국정감사와 조사를 하지만 수단과 전문성이 부족하다. 게다가 정략이 얽히면 조사는 헛돌기 일쑤다. 사법부는 사후에 범법을 단죄하는 역할이다. 반면 감사원은 사업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조사하는 게 모두 가능하다. 사람들을 소환하고 계좌를 뒤질 수도 있다. 이처럼 감사원은 매우 중요한 감시자다. 이런 감사원이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잘못된 4대 강 감사로 신뢰가 흔들린 데다 물러나는 감사원장이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비난하는 일까지 터진 것이다.

 과거 독재·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국민은 감사원을 잘 알지 못했다. 정권 비리를 파헤치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감사원이 국민의 눈앞에 등장한 건 20년 전이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이회창 대법관을 감사원장에 임명했다. 강력한 개혁의 신호였다. 이회창의 감사원은 율곡사업 비리를 파고들었다. 이 사업은 군이 외국 무기를 도입해 전력을 증강시키는 것이다. 감사원은 무기 중개상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인사들을 대거 고발했다. 노태우 정권의 국방장관 2명, 공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이 구속됐다. 무기 뇌물로 전직 군 수뇌부가 대규모로 감옥에 간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사실 이 감사도 현직 정권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감사원의 독립성이 100% 실현된 사례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군 수뇌부의 대형비리를 과감하고 분명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감사원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감사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을 서면 조사하고, 전직 군 고위관계자들을 줄줄이 소환하자 국민은 성원을 보냈다. 감사원이 뜨면서 이회창의 머리는 구름에 닿았다. 대쪽 원장은 대쪽 총리가 됐고 급기야 대통령 후보에까지 이르렀다. 율곡비리 감사라는 승부수가 없었다면 이회창의 정치적 성장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율곡비리 감사가 성공작으로 평가되는 것은 명백하게 존재하는 비리만을 명확하게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공정성이 의심되는 정책적 판단이나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된 무리한 감사는 없었다. 있는 건만 그대로 보여주니 국민의 공감을 샀다. 감사가 지켜야 할 선을 철저히 지킨 것이다.

 반면 양건의 4대 강 감사는 이 선을 넘어버렸다. 핵심적인 부분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적인 감사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지난 7월 3차 감사에서 감사원은 이명박 정권이 대운하 추진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추진해 예산을 낭비하고 대운하 의혹을 지속시켰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청와대 행정관이 국토해양부 사무관에게 지시한 문건을 확보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것이다.

 누구라도 보(洑)를 한 번 살펴보면 대운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낙동강 함안보에 갔을 때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운하를 만들어 배가 다닐 수 있게 하려면 보를 크게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낙동강 다리들도 전부 고쳐야 합니다.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무슨 목적으로 어떤 정권이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감사원은 애초 계획대로 건설업체 담합 비리에 국한해서 감사를 진행했어야 했다. 그러면 혼선도 만들지 않고 나름대로 국익에 기여하는 본연의 역할을 해냈을 것이다. 그런데 문건을 확보했다며 느닷없이 ‘대운하 염두’라고 발표하는 바람에 4대 강 혼란은 급속도로 증폭되었다. 의혹을 키운 건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감사원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 4대 강 감사가 이렇게 춤을 추었는가. 양건은 떠나면서 외풍과 내풍의 연결을 주장했다. 이 부분이 4대 강 감사 파동을 지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4대 강과 관련된 일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4대 강 외풍이라면 박근혜 정권이 4대 강 사업에 흠집을 내기 위해 감사원의 손목을 은밀히 비틀었다는 뜻 아닌가. 정반대로 외풍 발언이 4대 강과는 관련이 없는 거라면 양건은 비겁한 사람이 된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경박한 언급으로 조직에 해를 끼친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국회는 청문회를 열어 양건 전 원장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 그가 국민이 보는 앞에서 언급한 ‘안팎의 역류와 외풍’의 실체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그가 입을 열면 외풍과 내풍의 책임자들을 증언대에 세워야 한다. 양건이 국회의 부름에 응하지 않거나 증언대에 서서도 입을 열지 않으면 그는 무책임한 사람이다. 이 나라에서는 지금 감사원장을 감사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